기록의 힘은 위대하다. 인간을 바꾸기도 하며 세상에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인류가 출현한 역사 이래, 어쩌면 인간의 존재 증명은 언어로 인해 변모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시대의 현재를 남기려는 행위는 어떤 굴곡의 시간을 막론하고 늘 진행되어 왔다. 최초의 기록이라 할 수 있는 원시인들의 수렵화, 최초의 광로로 인정하는 이집트의 '로제타석'은 인간이 진실을 알리길 원하는 동물임을 알려준다.
인류 최초의 책은 이집트 무덤에서 발견된 '사자의 서'. 일종의 망자를 위한 저승 여행 안내서로 보는데, 죽은 자들이 무사히 다음 세상에 도착할 수 있는 방법을 열거한 가이드북이라 생각하면 된다. 이집트인들은 죽음을 맞으면 총 7개의 문을 지나게 되는데, 각 문을 지키는 파수꾼과 마귀들의 위협에서 살아남아야 다음 생을 살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사자의 서에 적힌 주문들을 외워 신에게 도움을 청한다고 한다. 관문을 지날 때마다 금언들을 말함으로써, 자신을 보호하고 새로운 생에 다가갈 수 있다 본다. 이 책은 영생을 원하는 인간 욕망을 실현시키기 위한 바람이 담겨 있다. 그뿐만 아니라 무덤 속 망자의 생전 직업, 가족 관계, 사회적 지위나 평가 등을 상세히 적기도 했다.
표현의 방식이 다를 뿐, 언어의 본질은 무언가를 남긴다는 행위에서 시작된다. 언론은 사실을 기조로 현재를 반추하게 만들고, 소설은 작가의 상상력이 반영된 허구로 독자를 위로하거나 자의식을 열린 상태로 인도한다. 글을 쓰는 작가는 무엇을 남기기 위해서 펜을 드는가. 우리는 이 문제의식에서 타인의 관점과 만난다. 모든 것은 주관적 시선이 전제가 된다. 현재 우리가 발견하는 역사는 모두 '오래된 오늘'로 태어난 산물이다. 기억의 재편집은 인류사의 위대한 업적이자 성취다. 하물며 예술에서의 기록은 거룩한 사명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허구와 상상의 힘을 빌려 시간을 공유하는 놀이는 보다 엄격한 객관성과 중립성을 띠어야 한다. 다수라는 관객을 개인이라는 작가가 구축한 시간으로 관계를 맺기 때문이다. 특히 지역 연극계에서의 극작은 절대적으로 부재한 현실을 맞고 있다.
필자는 이집트인들의 책에서 대안을 발견한다. 있는 그대로 서술하고 상상으로 연장되는 판타지는 우리가 다시 찾아야 하는 언어다. 현대 연극은 희곡에서 출발한다. 언어의 세계를 만나 연출과 배우가 공동 제작하는 현재의 시스템을 준수하기 위해선 극작가들의 필력이 절실히 요구된다. 그럴싸한 소재와 자극적인 인물만 구조한 채 뚜렷한 주제 의식 없이 모호한 수사체만 남기고 막을 내리는 작품을 쉽게 본다. 언어의 기능이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는 이상, 극을 지켜보는 관객은 결코 무지하지 않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지적 우월주의나 감상주의가 아닌 단순하지만 깊은 공감이며 의식의 공유이다. 내용과 형식을 포기하지 않고 건실한 허구를 창조하는 작가가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작은 소극장들도 관객들로 붐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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