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이 한창이다. 벚꽃은 질 때가 가장 아름답다. 꽃말도 '삶의 덧없음과 아름다움'이다. 일제히 화려하게 꽃망울을 터트렸다가 그 아름다움에 취한 사이 눈 내리듯 순식간에 진다. 절정의 순간에 느끼는 무상함이다. 벚꽃에 해당하는 일본말은 '사쿠라'(櫻)인데 우리나라로 건너오면서 전혀 다른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정치인들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말이다. '다른 정치 세력과 은밀히 내통하는 변절자'라는 뜻이어서 그렇다.
흔히 알려진 것과 달리 정치 용어 사쿠라는 '벚꽃'(櫻)이 아니라 말고기를 뜻하는 일본말 '사쿠라니쿠'(櫻肉)에서 유래됐다. 말고기는 색깔이 벚꽃 같은 연분홍색이어서 소고기와 비슷하다. '양 머리를 걸어놓고 개고기를 판다'는 사자성어 '양두구육'(羊頭狗肉)의 일본 버전이 사쿠라니쿠인 셈이다. 소고기로 둔갑한 말고기를 속아서 샀을 때 일본인들은 '사쿠라니쿠'라고 말한다. '손님인 척하고 다른 손님의 흥정을 부추기는 바람잡이'를 사쿠라라고 부르는데 이 말에서 유래됐다는 설도 있다.
사쿠라는 1960, 70년대에 군사정권과 내통하던 야당 정치인을 비하하던 용어였다. 1965년 한일기본조약 체결에 찬성하는 정치인을 공격할 때도 쓰였다. 독재 정권과 협잡까지는 하지 않았지만 타협론을 내세우면서 뒷짐 지고 있던 야당 정치인들도 사쿠라로 매도됐다.
요즘 국내 정국을 흔드는 헌법 개정 논의를 보고 있노라니 사쿠라라는 말이 절로 떠오른다. 이번 개헌의 핵심 이슈는 분권, 즉 권력 나누기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타파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저마다 개헌안을 내놓고 있는데, 하나같이 그 제왕적 권력을 자신들이 가져가겠다는 주장들이다. 소고기라고 속이고 국민에게 말고기를 내놓는 격이다. 특히 총리 인사권을 국회가 가져가겠다는 대목은 전형적인 사쿠라니쿠다. 내각 인사권을 쥐는 총리를 국회가 가져가면 이는 사실상의 내각제이고, 제왕적 대통령 대신 제왕적 총리가 탄생할 수밖에 없다.
권력 나누기의 지향점은 지방분권이어야 한다. 중앙이 가진 비대한 권한을 지방이 나눠 가져야 하는 토대를 헌법 개정을 통해 마련해야 하는 것이다. 그 골든타임이 바로 지금인데, 많은 정치인들이 지방분권에 딴지를 걸고 있다. 그들이 바로 이 시대의 사쿠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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