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마 문을 닫고서야 양만리
가마 문을 닫고서야 산 빛을 어찌 알랴 閉轎那知山色濃(폐교나지산색농)
산에 핀 꽃 그림자 무논 속에 떨어졌네 山花影落水田中(산화영락수전중)
울긋불긋 물속의 꽃, 자세히 살펴보니 水中細數千紅紫(수중세촉천홍자)
낱낱이, 산꽃들과, 맞다, 데칼코마닐세 點對山花一一同(점대산화일일동)
*원제: 水中山花影(수중산화영): 물속의 산꽃 그림자
남송(南宋) 시대를 대표하는 시인인 양만리(楊萬里·1124~1206)의 시에도 눈부시게 환한 봄날이 왔다. 이 세상 천산 만산에 새싹들이 영치기 영차 한꺼번에 죄다 들고 일어난다. 어, 어, 어, 하는 사이에, 대지의 신이 갓 돋아난 눈록(嫩綠)에다 점점 더 시퍼렇게 덧칠을 해댄다. 시퍼렇게 환(幻)을 친 바로 그 산 빛을 배경으로 하여, 형형색색의 온갖 꽃들이 아예 맨발로 뛰어나와, 한바탕 트위스트 광란의 축제를 벌이고 있다. 그 울긋불긋한 산꽃들의 그림자가 무논에 판박이로 들입다 떨어져서, 낱낱이 다 몽환적인 데칼코마니를 이루고 있다.
"대지가 제 속의 분홍색 다 토해 놓았나?/ 청도의 봄은 곳곳마다/ 어질어질 분홍색도 가지가지.// 하야스레붉으죽죽분홍 산길./ 보라스럼밝으레연분홍 무덤./ 파르므레붉으노르끼분홍 마을./ 달콤맵싸레연두비스무리분홍 밭머리./ 어디든 죄지어 흔들리는 마음의./ 거므스레하야스름분홍 꽃나무들.// 저 한참 더 흔들리는 분홍 일색(一色)." 이하석 시인의 '봄색(色)'이다. 아아, 이 미친 봄날의 지랄발광하는 흥취를 타고 앞산 뒷산의 '분홍 일색'이 다 들썩거린다.
그런데, 왜 그러고 있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가마를 타고 가마 문을 철커덕 닫아놓은 채로 어디론가 가는 사람이 있다. 가마를 타는 재미가 제아무리 좋다 해도, 캄캄한 어둠 속에 앉아 있기보다는, 설사 매 맞으며 간다고 하더라도 가마 메고 가는 것이 훨씬 더 좋을, 봄날도 이토록 환한 봄날에 가마 문을 닫고 앉아 있다니? 저 사람에게 천지간에 눈부신 봄날이 와서 산 빛이 제아무리 푸르다고 한들, 그 푸른 산에 '분홍 일색'이 으쌰으쌰 다 들썩거리고 있다고 한들, 그 '분홍 일색'들이 물속에 거꾸로 뛰어내려서 낱낱이 다 황홀한 데칼코마니를 이루고 있다 한들, 도대체 그게 다 무슨 소용일까. "봄날이 오며는 뭐 하노 그자… 꽃잎이 피면은 뭐 하노 그자"다.
누가 말했던가? '연꽃 피는 소리가 대포 소리처럼 들린다'고. 자연과 소통할 수 있는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있는 사람에게는 연꽃 피는 소리가 대포 소리처럼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바로 그 감각의 문을 철커덕 닫고 있는 사람들은 마을 앞 연못에 해마다 연꽃이 소담스레 피어 그윽한 향기를 내뿜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를 알지 못한다. 그런 사람에게 되다 만 시 한 수 읊어주고 싶다. "그대/ 그 죄를 다,/ 다 어이 감당할래,/ 엄청 눈물겹고 아프도록 부신 봄을,/ 아 그냥 다 보내놓고// 죄인 줄도/ 모른/ 그 죄".(이종문, '그 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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