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서툰 미소 뒤에는

나른한 오후의 천적은 식곤증이다. 다행히 20대 청춘들의 얼굴에서 생기가 얼비친다. 스크린 표면에서 웃고 있는 '서툰 미소' 덕분인 듯하다. 입꼬리만 살짝 올라간 생경한 미소는 웃는 듯한 표정이라고 하는 것이 맞겠다. 근육의 움직임이 생략된 그 미소는 바로 '아르카익 미소'(archaic smile)였다. 미소 보고 실소하는 학생들을 보자 묘안이 떠올랐다. 아르카익 미소 따라하기를 제안한 것이다. 순간 처음과는 사뭇 다른 웃음들이 터져 나온다. 식곤증이 엄습했던 공간이 잠시나마 웃음으로 환기됐다. 유쾌한 웃음은 나와 상대를 두루 기분 좋게 만든다. 웃음은 전염성이 있어서 좋다. 누구 하나 크게 웃고 나면 다른 사람들의 잠도 몰아낸다. 더불어 수업 분위기도 살아난다. 하지만 아르카익의 미소를 알고 그렇게 웃는 학생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 글을 읽은 독자들도 살짝 입꼬리 한번 올리는 연습이라도 해보자.

그리스 미술은 대략 네 시기로 구분된다. 기하학기, 아르카익기, 고전기, 헬레니즘기. 그중에서 정면성의 법칙에 따른 조각상이 나타난 시기는 아르카익기(B.C. 600~480년)이다. 이 시기의 인체조각상의 표정은 입꼬리만 살짝 올라갔다. 실소를 자아냈던 바로 그 아르카익 미소이다. 그리스 시대에는 정확한 비례에 조화와 균형이 미의 절대기준이었다. 산술적으로 세계 질서를 이해한 피타고라스학파의 영향이다. 차츰 자연철학이 전개되면서 예술에도 변화가 왔다. 조각은 감정 표현을 시도했지만 한계에 직면했다. 어색한 아르카익 미소가 그랬다. 아르카익 미소는 그리스 시대 초기 창작 의지가 반영된 새로운 표현의 예고였다.

설명 중에 끼어든 생뚱맞은 질문 하나가 입안에서 맴돈다. 독백 같은 질문은 "아르카익 미소 뒤에 가려진 것은 뭐죠?" 엉뚱할수록 자답의 폭도 넓지 않을까. 필자는 이렇게 답을 달고 싶다.

미술사가 기록한 변화무쌍한 표정들은 모두 서투름이 출발점이다. 누구나 처음부터 완벽할 순 없다. 매 순간은 과정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이다. 숙련된 기술의 체화는 그다음 일이다.

끊임없이 되묻고 쉴 틈 없이 탐색하며, 추진할 때 비로소 발전도 기대할 수 있다. 조금씩 변화하며 성장하는 모습이야말로 미의 최대치가 아닐까. 아마도 어색한 아르카익 미소 뒤에는 그것이 가려져 있을 것이다. 서툰 미소라도 시도할 때 가치를 매길 수 있고, 덤으로 식곤증까지 단박에 몰아낸 박장대소도 기대할 수 있다고.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