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대영의 새論새評] 독불장군의 말로

서울대 정치학과 박사. 동북아역사재단 기획실장. 경희대 공공대학원 겸임교수
서울대 정치학과 박사. 동북아역사재단 기획실장. 경희대 공공대학원 겸임교수

오로지 자신 의지로 상황 돌파하다

독선과 아집에 빠져 권력 토대 약화

문재인 대통령-김정은 위원장 회담

허심탄회하게 공영의 길을 찾아야

지난주 1심 재판부가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24년의 징역형을 선고하는 모습이 전 국민에게 중계되었다. 환호와 비탄이 교차하는 상황에서 독불장군(獨不將軍)의 말로를 보는 것 같아 심정이 착잡하다. 타인과 더불어 상의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판단과 의지만으로 상황을 돌파하려는 독불장군은 끝내 외로운 길을 갈 수밖에 없다. 어느 누구의 책임으로 돌릴 수 없는 자업자득일 따름이다.

그런데 독불장군이 되는데 주변 사람들의 역할도 크다. 진시황이 부하 장군들과 소원해지고 결정적으로 자신의 아들 부소와도 관계가 멀어진 데에는 간신 조고의 역할이 컸고, 항우가 뛰어난 책사 범증과 결별하고 멸망의 길로 치달은 것은 진평의 이간책 때문이었다. 범증은 유방의 책사였던 장량이나 진평에 못지않은 뛰어난 능력의 소유자였지만 항우의 잘못된 의심을 풀지 못한 채 귀향길에 병사하고 말았다. 그때부터 항우의 몰락은 시작되었다.

박 전 대통령이 지난 총선에서 여당의 당대표와 반목하고 원내대표였던 유승민 의원을 '배신의 정치'라는 낙인을 찍어 공천에서 배제한 것이 국회의 탄핵 의결 과정에서 결정적인 작용을 했다. 누군가 그 과정을 소상히 밝힌다면 귀중한 역사적 교훈이 될 것이다. 결과적으로 박 전 대통령은 독불장군의 길을 선택했고 결국은 고립되어 파멸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고립되지 않았다고 해서 범죄 사실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우군이 많은 상태에서는 방어력이 높아지기 마련이다.

이런 맥락에서 서양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권력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친구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한다. 독불장군 주변에도 이익을 탐하는 많은 사람들이 존재하지만 우정은 찾아볼 수 없다. 진정한 우정은 친구가 잘되기를 바라는 선의를 가질 때에만 형성되는 반면 대부분의 조직 관계는 이익 관계일 따름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항우는 범증을 누구보다 존경하고 예우했지만 그를 단지 승리를 위한 수단으로 여겼기 때문에 그 틈새를 진평이 효과적으로 공략할 수 있었던 것이다.

홀로 권력을 지켜낼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들이 독불장군이 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폭군이나 독재자는 대개 유능한 사람들이다. 동양의 대표적 폭군인 걸왕과 주왕 모두가 매우 뛰어난 인물이었고, 고대 로마에서 공화주의 혁명을 초래한 폭군 타르퀴니우스도 백전백승의 전략가인 동시에 뛰어난 외교 수완을 발휘한 인물이었다. 그들은 자기 능력을 과신하여 진정한 친구를 만들 필요를 못 느꼈고 마침내 독불장군으로서 몰락하고 말았다.

이달 27일 판문점에서 역사적인 제3차 남북 정상회담이 개최되는데 문재인 대통령이나 북한 김정은 위원장은 독불장군이 되지 말아야겠다. 국제관계에서도 독불장군의 말로는 비참하다. 히틀러의 막강 독일군도, 죽음을 불사했던 일본군도 연합군에 패배했다. 우크라이나를 두고 러시아와 유럽연합이 충돌하고, 아세안을 두고 중국과 일본이 각축하는 것도 협력 관계를 넓히기 위한 필사적 노력의 소산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중국 시진핑 주석과 만난 것도, 북미 정상회담 전에 한미 정상회담을 추진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다만 한일 정상회담의 진척이 없는 것이 의아할 따름이다.

남북 관계에서도 독불장군은 좋은 결과를 낼 수 없다. 나 홀로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고 자신할 경우 지속적인 협력 관계는 불가능하다. 대부분의 정치인들은 '나는 예외'라는 망상에 빠지는데, 냉혹한 현실 속에서 예외란 없다. 누구나 독불장군이 되면 그 말로는 비참해진다. 유능한 사람일수록, 또 지위가 높아갈수록 진정한 우정을 쌓아가는 데 소홀하기 마련인데, 그 결과 독선과 아집에 빠져 스스로 자기 권력의 토대를 약화시키고 만다. 민족 번영의 탄탄대로가 별도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갖는 사람과 더불어 허심탄회하게 대화하고 토론하면서 선의를 갖고 모두를 위한 길을 진지하게 모색할 때 우정이 싹트고, 그 속에서 공생과 공영의 길이 열리기 마련이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