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최고장인의 삶을바꾼 그 순간] 이봉이 진선미한복 대표

"아들 숙제 봐주려고 공부 시작, 어느덧 '박사 한복 기술자' 됐죠"

이 이야기는 뜻하지 않게 배움의 시기를 놓친 이들의 향학열을 위한 것이다. 한복으로 경상북도 최고장인 칭호를 얻은 이봉이(64'진선미한복 대표) 씨의 이야기다. 그녀의 삶을 바꾼 순간은 자식 교육의 열정이 터져 나온 때였다. 1993년 6월이었다.

30대의 이 씨는 장사하느라 바빴다. 슬하의 남매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시작하리라 마음먹은 일이 궤도에 올랐고 돈 버는 재미도 쏠쏠할 즈음이었다. 그때쯤 컴퓨터 게임에 중독된 아이를 둬 속 썩는 부모가 됐다.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의 의도는 알 바 아니었다. 그저 컴퓨터 게임에 몰두한 아들의 생활 패턴을 바꿔야겠다는 마음만 한 가득이었다.

그러나 아들이 숙제를 제대로 했는지, 안 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정작 본인이 중학교 중퇴 학력에 그쳤기 때문이었다. 배움의 기회를 놓친 것은 '한'(恨)이라는 흉터로 남았다. '산업화 세대'의 숙명 같은 상처였다. 그녀는 오히려 기회로 여겼다. 스스로 책을 들었다.

"엄마가 책을 들면 아이도 공부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나이 사십 넘어서 혼자 공부하려니 기초도 없고 쉽지 않았어요. 그런데 느려서 그렇지, 계속 보니까 되긴 되더라고요."

아침 5~6시에 일어나 도시락 6개를 쌌다. 9시에 가게 문을 열고 밤 10시에 문을 닫았다. 손님이 없을 때 공부했다. '못 배운 한'이라는 흉이 점점 사라져갔다.

1999년에는 딸과 수능시험을 같이 쳤다. "엄마가 수험장까지 들어오기에 딸내미 도시락 갖다 주고 나가는 줄 알았더니 그 자리에 앉아서 수능시험 치고 가더라"는 말을 들었다.

2014년 성신여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박사 한복 기술자'라는 별칭이 따라붙었다. 서울시 무형문화재 침선장 보유자인 박광훈 선생의 이수자가 됐고, 한국궁중복식연구원 이사로 활동했으며, 대학 강단에 겸임교수로 서기까지 했다. 공부하지 않는 아들에게 모범이 되고자 시작했던 공부가 그녀의 인생을 바꿔놓은 것이라 할 만했다. 그러나 수많은 칭호와 명예를 얻음으로써 자신의 입지가 변했다고 생각지 않는다고 했다. 사람들이 자신을 보는 눈이 달라진 건 더더욱 아닐 거라고 했다. 오히려 자신이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져 감사하다고 했다.

"내 마음이 달라졌어요. 타인을 보는 시각이 달라진 거죠. 여유가 생긴 것이죠. 이런저런 사정들이 이해가 되니까 오히려 겸손해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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