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시태그: #성장드라마 #모녀이야기 #훈남나옴
*명대사: "캘리포니아에서 쾌락을 추구하는 자는 새크라멘토에서 크리스마스를 지내봐야 한다."
*줄거리: 원래 이름은 크리스틴이지만 스스로 '레이디 버드'라는 이름을 지은 주인공은 새크라멘토라는 작은 도시에 살고 있는 꿈 많은 여고생이다. 가장 큰 꿈은 동부에 있는 뉴욕 같은 도시의 대학으로 진학해 이곳 새크라멘토를 떠나는 것. 그러나 부유하지 않은 가정환경에 부진한 학업 성적으로 동부의 대학교 입학은 그녀에게 먼 나라 이야기다. 엄마의 잔소리에 반항하고 베프(베스트 프렌드)랑 수다로 하루를 보내다가도 별거 아닌 일로 토라지고 또 화해하고 잘생긴 남학생에 마음 뺏기는 어느 철부지 소녀의 평범하고도 공감 가득한 이야기.
배우로 더 유명한 그레타 거윅이 감독으로 돌아왔다. 영화 속 배경인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크라멘토는 그녀의 실제 고향으로 영화에는 유년 시절 자신이 느꼈던 성장과 떠남의 정서까지 담겨 있다. 그레타 거윅은 실제 경험담은 영화에 전혀 없다고 말했지만 소녀의 성장기를 담은 영화였던 '프란시스 하'부터 소녀 성장 드라마로 이미지를 굳힌 덕분인지 이 이야기는 그레타 거윅과 사뭇 맞닿아 있는 느낌이다.
영화는 뜬금없이 새크라멘토를 찬양하는 문구로 시작된다. "캘리포니아에서 쾌락을 추구하는 자는 새크라멘토에서 크리스마스를 지내봐야 한다." 이 말은 새크라멘토 출신의 저널리스트 존 디디온이 새크라멘토를 찬양한 말로 주인공 레이디 버드가 생각하는 지루하기 짝이 없는 새크라멘토와는 정반대의 심상을 나타낸다. 한 친구가 고향이 어디냐고 묻자, 레이디 버드는 '샌프란시스코'라고 답한다. 이는 그레타 거윅 감독이 각본을 쓸 때 가장 먼저 떠올린 장면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거부한 데서 오는 수치심으로부터 이야기를 쓴 것이다. 샌프란시스코와 새크라멘토는 발음도 비슷하게 들리고 같은 캘리포니아주에 속해 있지만 인지도로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그래서 주인공은 좀처럼 흥미로운 일이라곤 일어나지 않는 심심하고 지루한 새크라멘토를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이다. 이처럼 새크라멘토라는 배경은 주인공을 둘러싼 하나의 캐릭터로서 의미심장하다. 새크라멘토는 그녀가 알고 있는 세계의 전부지만 그녀는 성장하기 위해 그 세계를 나오고 싶어 한다. 첫사랑처럼 평생 마음에 품고 그리워하게 되겠지만 말이다.
이쯤에서 주인공의 이름 '레이디 버드'를 살펴볼까 한다. 부모가 지어준 원래 이름은 '크리스틴'이지만 주인공은 이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래서 스스로 레이디 버드라고 이름을 지어서 그렇게 불러달라고 강요한다. 레이디 버드란 직역하면 무당벌레고, 여자 친구에게 애칭으로 부르는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필자는 '레이디' '버드'를 혼합한 말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지긋지긋한 촌구석을 떠나 화려한 도시에서 새처럼 날아오를 주인공에게는 이 표현이 어울리기 때문이다. 애써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 나오는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새의 세계이다'라는 유명한 구절을 인용하지 않아도 성장하려는 주인공과 새는 잘 어울리는 은유다. 한편 그레타 거윅 감독은 레이디 버드라는 이름이 통통 튀면서 촌스러워서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출신지를 새크라멘토 대신 샌프란시스코라고 거짓말한 것처럼 미들네임을 스스로 지어 그렇게 되려고 하는 행위 역시 거짓말로 진실한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이라 표현했다.
어쩌면 이렇게도 나와 우리 엄마와 똑같을까. 영화 속 주인공 모녀는 전 세계 어디서 봐도 공감 갈 만큼 우리네 모습과 닮아 있다. 다른 엄마는 다정하고 우아한데 왜 우리 엄마만 이럴까. 한심한 듯 나를 바라보는 눈초리며 미운 말투까지, 엄마라고 하지만 도무지 나를 예뻐하는지도 모르겠다. 좋을 때도 있지만 서로 싸우고 할퀴고 생채기를 내고야 마는 엄마는 일단 가장 먼저 벗어나고픈 울타리다. 서로 사랑하지만 안타까울 만큼 서로에게 닿지 못하는 두 여인을 그리다가 마지막 순간에 사랑을 표현하는 것. 연인 이야기 같지만 이것은 그레타 거윅 감독이 애초부터 이 영화의 모티브로 생각했던 모녀 관계 구도다. 대부분 여성이 청소년 시절에 각자의 어머니와 아름답고 헤아릴 수 없이 복잡한 관계를 맺었고 이는 우리가 배우는 감정의 가장 근원적인 형태다. 이 영화에는 총 세 번의 로맨스가 나온다. 하나는 첫 키스의 주인공이나 동성애자였던 대니, 또 하나는 신비로웠던 동경의 대상 카일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엄마와의 애증 관계다. 이 중 가장 격정적인 로맨스는 단연 엄마와 레이디버드의 로맨스로 모녀 관계는 영화의 중심에 있다.
영화는 이처럼 새크라멘토와 크리스틴이라는 둥지에 저항하는 레이디 버드의 분투기를 담아낸다. 그러면 레이디 버드는 알과 둥지를 깨고 훌훌 날아가 돌아보지 않을 것인가? 당연히 그렇지 않다. 영화는 후반부로 가면서 또 다른 명제를 제시한다. 새가 태어나 자랄 수 있도록 지켜준 알과 둥지라는 세계가 바로 자기 자신을 이루고 있다는 것. 자신이 처한 상황이 싫증 나고 자신의 이름마저 부인하고 싶었던 레이디 버드는 더 이상 알을 부정하지 않기로 한다. 새크라멘토와 엄마라는 알이 없었다면 레이디 버드도 없었다. 그녀는 느리지만 조금씩 깨닫기 시작한다. 스스로 레이디 버드라고 불리길 원하는 소녀는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지극히 평범한 여고생의 모습이다. 그 나이 때는 몰랐다. 엄마랑 지긋지긋하리만큼 툭탁거리며 싸울 때도 그게 마지막이라는 것을. 대학을 가며 한 번 엄마와 고향이라는 둥지를 떠나고 나면 다시 그 따뜻한 품 안에서 지낼 날이 없다는 것을. 그게 성장이라는 뜻이고 어른이 된 것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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