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묘한 외교로 삼국을 통일한 민족의 영웅인가? 외세를 끌어들여 민족 자주를 해친 통한의 군주인가?
태종무열왕 김춘추의 업적은 깊이 분석하면 할수록 다각적으로 해석된다. 삼국 중 가장 작고 약한 신라의 왕으로 통일의 대업을 이루어낸 지도력과 외교력에 대한 평가 이면에는 그만큼 비판적 평가 역시 존재한다. 당(唐)을 끌어들여 고구려, 백제를 멸망시킨 나당연맹이 정당했느냐 하는 점이 논란의 중심이다.
신라사 연구의 대가 주보돈 경북대 명예교수가 삼국통일을 둘러싼 숨 막히는 과정과 내막을 김춘추와 김유신을 주축으로 풀어냈다. 외교사적 관점에서 격동기 태종무열왕의 대처 방안을 다각도로 분석하고 있다.
주 교수는 이번 작업을 통해 삼국통일 과정을 명쾌하게 복원했지만 무엇보다 '편견'에 가까운 기존 학설을 통쾌하게 정리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찾는다.
◆유교 이데올로기 입각 새 시대 구상
삼국통일의 완성은 단순히 신라와 당의 연합 타이밍이 맞아떨어졌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내외부적으로 서로 조응하는 정세(政勢)의 메커니즘도 크게 한몫했다.
주 교수는 통일의 첫 출발을 김춘추의 두 가지 비전에서 찾는다. "무열왕은 첫째, 새 신라사회 건설에 대한 청사진이 확고했고, 둘째, 그를 구체화할 수 있는 유능한 인재를 적재적소에 등용했습니다. 김춘추는 진골 출신으로 주류사회에서 소외당했던 자신과 같은 처지였던 김유신을 중용하고, 유학자 강수(强首)의 능력을 일찍이 알아보고 외교가로써 활용했던 것이죠."
저자는 김춘추가 당과 외교관계를 중시한 것은 당제(唐制) 수용을 통해 유교 이데올로기에 입각한 새 시대를 창출하려 했던 열망에 기인했다고 분석한다. 당의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것도 군사적으로 당을 이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꿈꿨던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고자 했던 목적이 바탕이 됐다는 것.
김춘추가 마음속에 품은 이상적 정치사상은 유학이었다. 당시 신라는 불교가 매우 강한 지배 이데올로기였으나 신분상 왕이 될 가능성이 없었던 김춘추는 어린 시절부터 유학에 관심을 두었던 것이다. 권력욕에 사로잡힌 야심가라기보다는 유학을 근본이념으로 삼아 신라사회를 개혁하고자 했던 선도자였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아울러 김춘추의 정치적 동지였던 김유신도 비슷한 입장에 있었다고 강조한다. 그는 '김춘추와 김유신은 단순히 정치적 불만을 지니고 권력 장악 자체에 목표를 두었다기보다는 신라사회의 근본 모순을 인지하고 이를 혁파하려는 데에 인식을 같이했다'며 정치와 합치됐던 불교와 달리 유교는 정교(政敎)가 분리된 이데올로기였고, 이러한 측면에서 김춘추는 새로운 시대를 연 주역 이었다고 평가했다.
◆외교사적 입장에서 신라 통일 조명
김춘추가 '유교 국가' 건설이라는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7세기 동아시아 격동기에서 소국 신라의 생존 전략으로 택한 것은 내부 정비와 외교였다.
그는 외교 드라이브를 절묘하게 성사시키며 동북아 국제관계의 중심축으로 부상했다. 외교적 관점에서 각국의 이해관계를 다각도로 고찰하고 명쾌하게 정리・분석해 신라의 이해와 접목시켜 갔던 것이다.
저자의 논점을 따라가다 보면 당시 신라 내부 사정뿐만 아니라 고구려와 백제의 외교 전략, 당과 일본의 당시 국내 정세 등을 소상히 파악할 수 있다. 예를 들어 660년 '나당동맹'이 가능했던 이유는 당태종 이후 측천무후와 진덕여왕 사후 김춘추가 모두 정치적 기반을 다지기 위해서 대외전쟁으로 눈을 돌리는 타이밍이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 당과 백제, 당과 고구려를 교묘하게 이간시켜 당의 신뢰를 얻어가는 과정이나 648년 당과의 밀약이 나당전쟁으로 비화된 원인, 과정 등이 상세하게 서술돼 있다.
◆김춘추 김유신에 얽힌 편견 뒤집기
삼국통일의 배경에는 당과 결탁한 신라의 배족(背族) 행위가 있었다는 설은 학계만이 아니라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널리 인식되어 왔다. 이런 입장의 차이는 삼국통일의 의미에서도 엄청난 해석 차이를 벌려 놓고 있다.
이러한 관점들이 힘을 얻는 것은 '신라가 외세의 힘을 빌려 통일하지 않았다면, 넓은 영토를 다스렸던 고구려가 통일의 주인공이 됐을 것'이라는 가정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김춘추와 김유신에 대한 기존의 평가는 근현대의 '민족' 관념에서 재단한 것이며, 왜 김춘추가 친당 외교를 펼쳤는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즉 당시 삼국은 동족(同族)이 아니라 당과 마찬가지로 서로 외세로 여기고 있었다는 것.
저자는 "당시 삼국 사이에는 서로 같은 뿌리에서 나온 동족(同族)이라는 인식이 전혀 자리를 잡지 못한 상황이었다"며 "삼국은 생존을 위해 철저히 대결할 수밖에 없었고, 다만 서로 비슷하다는 동류의식만 갖고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럼에도 삼국을 오늘날의 입장에서 하나의 민족국가로 간주해 김춘추와 김유신의 행위를 비난하고 폄훼하는 것은 정당치 않다는 것이다. 399쪽, 1만9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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