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디지털 은둔자

구형 아이폰을 버리고 새 스마트폰을 샀다. 7년 넘게 썼더니 아예 느림보가 돼 스마트폰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해서다. 호기심에 안드로이드 휴대폰으로 바꿨는데 편리한 모바일 결제 서비스도 아이폰에 등을 돌린 이유 중 하나다.

모바일 결제는 신용카드 없이도 결제할 수 있고, 은행에서 현금도 인출할 수 있다. 게다가 이용 내역을 조목조목 정리해주니 따로 가계부를 쓰거나 메모를 하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모바일로 결제할 때마다 드는 의문점이 있다. 기록된 개인 생활정보가 오로지 사용자 편의를 위한 것일까 하는 점이다. 어디에서 무엇을 샀고, 무엇을 먹었으며 매달 카드 사용 금액이 어느 정도인지 등은 그냥 단편적인 정보다. 하지만 정보가 모여 빅데이터가 되고 기업이 다른 용도로 활용한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게다가 불순한 의도의 거래물이 된다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연일 뉴스의 초점이 되고 있는 '페이스북 이용자 개인 정보 유출' 사건도 그런 케이스다. 그제 미국 의회 청문회에 출석한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는 "명백한 실수다. 경영자인 내게 책임이 있다"며 잘못을 시인하고 "어떤 규제도 달게 받겠다"고 했다. 이 사태는 2016년 미국 대선 당시 페이스북 이용자 8천700만 명의 개인 정보가 영국 데이터 분석 회사로 넘어갔다는 내부자 폭로로 불거졌다. 한국인 이용자 8만6천 명의 개인 정보도 들어 있다. 트럼프 선거 캠프에 해당 정보를 넘겼다는 의혹과 함께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운동에 유출된 개인 정보가 악용됐다는 증거도 나왔다.

문제가 커지자 페이스북은 개인 정보 보안기능 업데이트나 광고주의 개인 정보 접근 차단 등 대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기업이 마음만 먹으면 수집한 개인 정보를 분석하고 상업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다는 점에서 근본 해결책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디지털 문맹'인 미국 상하 의원들이 청문회에서 아무리 닦달을 해도 그때뿐이라는 말이다. 평소 티셔츠만 입는 저커버그가 청문회에 나오면서 정장 차림으로 바꾸듯 기업은 언제든 변신할 수 있다.

개인 정보는 기업이라는 정보 사냥꾼에게는 더없이 좋은 먹잇감이다. 이를 피하려면 스스로 개인 정보를 지키는 수밖에 없다. 가급적 개인 정보 노출을 피하고 '디지털 은둔자'로 사는 게 신상에 이로운, 참 이상한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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