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文대통령 직접 나선 김기식 사태] "여론에 떠밀려서야…" 도덕적 명분 쌓기 나서

한발 물러선 청와대…국민 비판 받아들이지만 위법·관행 여부 확인해야

자유한국당 정태옥(오른쪽) 대변인과 신보라 원내대변인이 13일 오후 국회 의안과에
자유한국당 정태옥(오른쪽) 대변인과 신보라 원내대변인이 13일 오후 국회 의안과에 '김기식 금융감독원장 관련 의혹들에 대한 진상규명과 청와대 인사체계 점검을 위한 국정조사 요구서'를 제출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13일 여론의 집중포화를 받고 있는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의 거취 문제를 두고 결국 직접 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섰다. 직접 친필 메시지를 내고 "김 원장의 위법 여부를 수사 중인 검찰과 도덕성 기준을 판별할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판단에 따라 '사임 여부'를 결정토록 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한 것이다.

'사퇴는 없다'던 기존 청와대의 완강한 입장에서 일단 한발 물러선 것으로 보이며 검찰과 선관위의 조사 결과에 따라 차선책을 찾겠다는 출구전략으로도 읽힌다. 인사 문제에 관해서 만큼은 문재인 정부에 협조적이었던 정의당이 당론으로 '김기식 불가' 입장을 밝힌 데다 김 원장이 몸담았던 참여연대마저 임명에 부정적인 기류로 돌아서는 등 사퇴 압력이 갈수록 거세지는 현실을 감안해 문 대통령의 메시지가 나온 것으로 분석된다.

◆메시지 왜 냈나?

문 대통령이 직접 메시지를 낸 것은 '마음먹고 한 인사'임에도 불구하고 여론의 거센 반대에 직면, 심기가 복잡해진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또 야당의 공세와 언론의 잇따른 보도에 밀려 김 원장을 정리하는 것도 모양새가 좋지 않다고 판단한 것으로 관측된다.

일단 문 대통령은 언론과 야당이 김 원장에 대해 제기하는 문제가 국민의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는 점은 분명히 인정하고 있다. 문 대통령이 "국회의원의 피감기관 지원 해외출장이 위법 여부를 떠나 국민의 눈높이에 맞지 않다는 국민의 비판은 겸허하게 받아들인다"고 밝힌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금융감독 수장을 맡을 만한 최적임자를 물러나게 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는 게 문 대통령의 인식으로 보인다. 그동안 청와대는 피감기관이 부담하는 해외출장과 보좌관 동반 출장, 임기 말 후원금 기부, 해외출장 중 관광 등 야당이 문제 삼고 있는 대목은 국회의원 전반이 누려온 일종의 관행이었다는 점에서 그 책임을 김 원장 한 사람에게만 돌려서는 안 된다는 취지의 주장을 해왔다.

문 대통령은 이와 관련해 "당시 국회의 관행이었다면 야당의 비판과 해임 요구는 수긍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며 "궁극적으로 국민의 판단에 따라야 하겠지만 위법한지, 당시 관행이었는지에 대해 먼저 확인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김 원장을 물러나게 하려면 적어도 '객관적 위법 판정'과 '평균 이하의 도덕성 확인'과 같은 합리적 잣대가 필요하다는 쪽으로 문 대통령의 입장이 정리됐다고 볼 수 있다. 원장직을 수행할 수 없을 정도의 법적'도덕적 흠결이 드러나지 않는 한 인선을 철회하지 않겠다는 의지도 여전히 담겨 있는 셈이다. 이런 식으로 야당의 무차별적 공세에 밀려 김 원장을 물러나게 할 경우 앞으로의 인사에서 어려움이 클 것이라는 판단도 반영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번 인사는 개혁인사였다"

문 대통령은 이날 메시지를 통해 김 원장을 낙점한 것이 개혁 인사였음을 분명히 했다. 강력한 금융개혁을 추진하기 위해 심사숙고 끝에 결정한 인사가 또다시 좌초될 수도 있는 위기에 놓이게 된 데 대한 안타까움을 드러낸 것이다.

문 대통령은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한 분야는 과감한 외부발탁으로 충격을 주어야 한다는 욕심이 생기지만 과감한 선택일수록 비판과 저항이 두렵다. 늘 고민"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금융 분야를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한 분야'로 인식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특히, 지난 6일 발생한 삼성증권 '유령주식 공매도' 사건과 맞물려 문 대통령의 이 같은 인식이 더 굳어졌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또 문 대통령이 김 원장을 금융 분야에 외부 충격을 가해 개혁을 이끌 적임자로 판단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문 대통령이 특히 '해임'이 아니라 '사임토록 하겠다'고 언급한 대목이 주목된다. 김 원장의 행위가 위법하거나 도덕성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될 경우 인사권자인 대통령이 직접 해임하는 대신 김 원장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나도록 하겠다는 의미인 것. 이는 '해임'을 택할 경우 문 대통령의 인사가 당초 잘못됐다는 점을 인정하는 측면이 있어 이를 감안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김 원장, 결국 자진사퇴?

문 대통령이 직접 메시지를 낼 만큼 이번 사태에 대해 큰 고민을 하고 있다는 증거가 확인되면서 일각에서는 김 원장이 결국 자진해서 사퇴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해석도 내놓는다. 김 원장에 앞서 안경환 전 법무부 장관 후보자, 조대엽 전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 박기영 전 과학기술혁신본부장 등도 문 대통령에게 '부담을 주지 않겠다'는 이유로 자진사퇴한 바 있다.

문 대통령은 박기영 전 본부장 인선과 관련해서도 이번과 마찬가지로 인선의 배경을 다시 한 번 설명하고 악화한 여론의 재평가를 요청한 바 있다. 다만, 당시에는 직접 쓴 글을 공개하지 않고 박수현 전 청와대 대변인이 문 대통령의 뜻을 전하는 형식을 취했다.

당시 문 대통령은 "박기영 전 과학기술혁신본부장 인사 문제로 걱정을 끼쳐 드려 국민께 송구스럽다"면서도 "박 본부장의 과와 함께 공도 평가해야 한다"는 견해를 내놓았었다.

박 전 대변인은 당시 문 대통령의 입장을 전달한 것에 대해 "대통령이 인사권자로서 박 전 본부장을 왜 임명했는지 국민께 정확히 전달할 필요가 있겠다는 판단에서 이뤄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문 대통령은 박 전 본부장을 임명한 배경을 다시 설명하면서 여론의 재평가를 요청했지만, 박 전 본부장은 과학기술계마저 등을 돌리면서 결국 사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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