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medivalley가 들려주는 과학이야기] 표면장력 극복한 작은 생물들

박테리아, 혈관 속에서 암 치료 나노로봇 이끈다

똥파리 한 마리가 꿀단지에 빠졌다. 달콤한 맛에 취하는 동안 발이 끈적끈적한 꿀에 잡혀 버렸다. 아주 작은 벌레들이 사는 세상에서는 물이 꿀처럼 끈적끈적해지는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난다. 우리가 수영하는 물이나 작은 벌레들이 수영하는 물은 분명히 똑같은 물인데 무척 다르게 느껴진다. 도대체 얼마나 많이 끈적끈적하기에 박테리아는 초강력 파워를 내는 모터가 달린 꼬리를 가져야만 할까? 똑같은 지구에서 살지만 너무도 다른 나노월드로 한 발짝 들어가 보자.

◆물방울에 갇힌 개미

2017년 여름 미국 휴스턴에 강력한 허리케인이 12년 만에 찾아왔다. 도시가 온통 물바다로 변하면서 피난 행렬이 이어졌다. 이 가운데 불개미들도 떼를 지어 물 위에 둥둥 떠서 피난하는 모습이 곳곳에서 포착되었다. 불개미들은 물위에 뜰 뿐만 아니라 심지어 막대기를 가지고 물속으로 밀어 넣어도 다시 물위로 떠올랐다. 그런데 비눗물 한 방울을 떨어뜨리면 개미들이 순식간에 물속으로 가라앉는 것을 미국 조지아텍 데이비드 후 교수가 발견했다. 이런 마법 같은 일의 비밀은 바로 물의 표면장력에 있다.

표면장력이란 풀잎 위에 떨어진 빗물이 구슬 모양으로 둥글게 뭉치도록 하는 강력한 힘이다. 그 작은 물방울은 튼튼한 막으로 둘러싸인 것처럼 쉽게 깨지지 않는다. 개미가 앞발로 물방울을 밀고 가거나 등에 짊어지고 갈 정도로 물방울의 막은 튼튼하다. 그런데 어쩌다가 개미가 물방울 속에 빠지면 탈출하기가 어렵다. 실제로 호주에서 비 오는 날 물방울 속에 갇힌 개미가 사진작가 아담 곰리에 의해 촬영되었다. 이처럼 개미만큼 작아지면 물의 표면장력은 일상생활에서 큰 힘으로 작용한다.

◆온몸을 비틀어 헤엄치는 꼬마선충

이제 문구용 자의 가장 작은 눈금인 1㎜ 정도 되는 크기의 벌레들이 사는 세상을 보자. 숲 속 나뭇잎 밑이나 축축한 땅에 사는 예쁜꼬마선충(C. elegans)은 슬림한 S자 몸매를 유연하게 움직여 엘레강스하게 수영한다. 선충의 수영 속도는 초당 0.35㎜나 된다. 그런데 물고기처럼 선충이 꼬리만 살랑살랑 흔들어서는 앞으로 갈 수가 없다. 왜냐하면 똑같은 물이라도 선충만큼 작아지면 물이 무척 끈적끈적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충이 온 몸을 구부려서 파동 모양으로 움직이면서 앞으로 간다는 것을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의 마라티아 연구팀이 2010년에 밝혀냈다. 선충이 앞으로 가고 싶을 때는 머리에서 꼬리로 파동을 만들고, 뒤로 가고 싶을 때는 꼬리에서 머리로 파동을 만든다.

◆일등만이 살아남는 정자

1억 마리가 동시에 출발하여 몸속의 가장 큰 세포를 향해 질주한다. 1억 대 1의 경쟁에서 일등해야 살아남는 수영경기. 바로 그 경기에서 일등한 존재가 우리 자신이다. 정자는 전체 길이가 0.05㎜인데 이 중에 90%가 꼬리다. 정자는 이렇게 긴 꼬리를 힘차게 흔들어서 강한 추진력을 얻어 끈적끈적한 액체 속을 헤엄쳐 앞으로 간다. 정자는 한 뼘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난자에게 가기 위해서 끈적끈적한 액체 속을 한 시간 넘게 헤엄쳐서 간다.

◆프로펠러 꼬리 가진 박테리아

물고기에서 정자나 박테리아로 크기가 작아질수록 꼬리는 더 길어지고 강해진다. 박테리아만큼 작아지면 중력은 무시될 정도로 작아지지만 점도는 매우 크게 느끼게 된다.

대장균과 같은 박테리아는 크기가 0.003㎜ 정도 되며 실처럼 긴 꼬리인 편모를 3~6개 정도 가진다. 대장균은 편모를 이용해서 초당 0.025㎜ 정도의 속도로 헤엄친다. 박테리아는 편모 꼬리를 단순히 좌우로 흔드는 것이 아니라 강력한 파워를 내는 모터에 붙여서 프로펠러처럼 회전시킨다. 대장균이 편모를 시계 반대 방향으로 회전시켜서 앞으로 가고, 여러 개의 편모 중 일부를 반대 방향으로 회전시켜서 방향을 바꾼다는 연구결과를 미국 일리노이대학 이도 골딩 연구팀이 2009년에 발표했다. 또한 최근까지 박테리아가 몸통은 움직이지 않고 편모만 회전시켜 그 추진력으로 끈적끈적한 물속을 헤엄친다고 알려졌다.

그런데 박테리아가 물속에서 몸통도 나선형으로 움직이면서 편모를 회전시킨다는 연구 결과를 브라운 대학교의 케니 브루어 교수팀이 2014년에 발표했다. 박테리아 중에 편모가 없는 것들은 섬모를 이용하거나 그냥 미끄러지듯 움직이는 것으로 드러났다.

◆암 치료하는 나노로봇

요즘은 작은 벌레들이 헤엄치는 것을 조사해서 알아낸 것을 마이크로 로봇 개발에 잘 이용하고 있다.

정자나 박테리아 정도 크기의 작은 로봇을 만드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로봇을 움직이게 하는 엔진을 만드는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그 마이크로 로봇이 움직여야 하는 곳은 물이 꿀처럼 끈적끈적해지는 곳이어서 초강력 파워를 내는 엔진이 필요하다. 이 어려운 문제를 미국 카네기멜런대 메틴 시티 교수팀이 2006년에 아주 쉽게 풀어버렸다. 마치 말이 끄는 마차처럼 마이크로 로봇에 살아있는 박테리아를 붙여서 끌도록 하면 된다는 것이다.

이후 박테리아를 붙인 마이크로 로봇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2013년에 대장암, 유방암, 위암과 같은 암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나노로봇을 전남대학교 박종오 교수팀이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이 나노로봇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 바로 나노로봇에 붙은 박테리아다. 이 나노로봇이 혈관 속을 돌아다니다가 암세포를 만나면 약물을 뿌려서 치료한다.

바로 내 옆에서 너무나 다른 세상을 살고 있는 작은 벌레들의 일상을 조금 들여다봤다. 최근에 정자나 박테리아의 운동에 대한 연구뿐만 아니라 질병의 진단과 치료를 위한 마이크로 로봇 개발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선충을 '예쁜꼬마선충'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이제 박테리아도 '파워조랑말 박테리아'라고 불러줘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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