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전인식 농협은행 경주 동천지점장 "꿈에 박목월 시인이 호통…詩 쓰는 농부 됐지요"

다시 시 쓰기에 몰두, 호평 받아…하반기·내년쯤 시집 출판 계획

'세상 가득한 눈밭 다 녹을 때까지/ 겨울을 인내하다 껑껑 얼어붙은 내 몸/ 핏빛 붉은 진달래 꽃잎으로 눈을 뜰 때/ 비로소 살아 한번 가질 기쁨으로/ 눈부실 것을.'

전인식(55'사진) 농협은행 경주 동천지점장은 '세한도 속으로'라는 자신의 시에서 봄을 기다리며 맞이하는 농부의 모습을 이렇게 표현했다. 고통의 시기를 지나지 않고는 꽃피는 봄날 한때를 즐길 수 없다고 말한다.

전 지점장은 29년째 금융인의 길을 걸어오면서 은행원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지점장 자리까지 올랐고 시까지 쓰고 있어 동료들로부터 부러움을 한몸에 받고 있다. 시인으로서의 그의 이력을 살펴보면 화려하다. 1995년 신라문학대상, 선사문학상, 통일문학상, 불교문예 신인상 등 남들은 하나 받기도 어려운데 여러 차례 수상 경력이 있다. 매년 하나씩 상을 받던 그는 마지막으로 중앙 일간지 신춘문예에 도전했으나 최종심 3회, 본심 3회의 씁쓸한 성적표를 안았다. 의욕만 갖고 도전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급기야 절망하며 '나는 여기까지다' 하며 시 쓰기를 접었다.

그리고 이십여 년 가까이 의도적으로 시를 멀리하며 살아오던 그는 어느 날 꿈에 박목월 시인이 나타나 "니, 지금 여기서 뭐하노" 하며 호통치는 꿈을 꾸고는 다시 펜을 들었다고 한다. 이후에 웹진 '시인광장'을 비롯한 중앙 문예지를 통해 발표한 시들이 호평을 받았으며, 매월 각종 매체로부터 원고 청탁을 받고 있다. 서울지하철 스크린도어에 시가 걸리기도 했으며, 모 지방 신문에 실크로드 탐사 기행문 연재와 신문사 칼럼도 쓰는 등 글쓰기의 열정이 넘쳐난다.

한동안 시 쓰기에 몰두하던 그는 이번엔 농부로서의 삶에도 도전했다. 주말에는 농부로 변신하는 것이다. 그의 밭에는 아로니아와 와송 등을 비롯한 여러 작물이 자라고 있다. 그가 사는 시골집에는 '시쓰는 농부'라는 당호(堂號)를 지어 걸어 두었다. 퇴직 후에는 농사지으며 시를 쓰는 인생 이모작을 준비하고 있다. 인터넷상 닉네임 또한 시쓰는 농부로 여러 분야에서 다양하게 활동하고 있다. 최근 서울의 서너 군데 출판사로부터 시집 출판 요청을 받고 있어 하반기쯤에는 시집이 나올 예정이다. 그리고 그동안 써놓았던 200여 편의 시를 정리해서 내년쯤 출판을 계획하고 있다.

그는 욕심이 많다. "퇴직 무렵에는 산문집 발간도 염두에 두는 등 본격적인 글쓰기에 매진하겠습니다. 삼국유사 속 설화나 인물을 소재로 한 시집과 '그리스인 조르바' 같은 명작을 소재로 하는 시집도 준비하고, 시간이 나면 소설도 쓸 생각입니다. 농사를 지어서는 신세 진 모든 분들에게 선물하는 기쁨도 누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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