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에 난 상처가 아픈 건 듬뿍 정들었기 때문이다. 누군가 자동차를 긁고 가버렸다. 낡은 차가 더 처연하다. 상한 마음은 상처 난 곳의 면적에 비례한다. 실수를 은폐하고 사라진 그가 야속했다. 소리 없이 원망도 자라난다. 그 모습이 안타깝던 지인이 일침을 놓는다. "어쩔 수 없는 일이면 툴툴 털어버리소. 자꾸 쌓이면 독이 됩니다!"
'정신 차리다'는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지 싶다. 살짝 술기운에 기댄 말이 삶의 태도를 바르게 방향을 잡아준다. 고마움에 농담을 반반 섞은 별칭으로 취중 진담에 대한 답례를 했다. 애주가여서일까. '술의 신'이란 별칭을 흔쾌히 수락한다. 고백하건대 술의 신은 신화에서 차용한 말이다.
그리스 신화에는 술의 신이 나온다. 로마의 바쿠스(Bacchus)에 해당하는 그리스의 신은 디오니소스(Dionysos)이다. 디오니소스는 부활의 신이자 쾌락의 신이다. 독수리나 번개가 제우스를 상징한다면 포도는 디오니소스를 상징한다. 포도는 술의 전 단계이다. 광란의 술잔치란 의미의 배케넬리언도 바쿠스에서 유래한 형용사이다. 하여 미술작품에서 디오니소스는 머리나 허리, 전차에 어김없이 포도덩굴을 둘렀다.
이를 증명하듯 카라바조의 작품도 머리에 포도 덩굴을 둘렀다. 비교적 점잖은 자세로 보아 광란의 축제 현장은 아닌 듯하다. 취한 듯 적을 제압하던 영화 '취권'(1978년)의 주인공처럼 유연하면서도 중심을 잃지 않은 자세야말로 고수의 취기이다. 신화의 주인공들은 인간의 유한성 그 너머를 산다. 어처구니없는 실수마저 용인되는 이유이다. 그러나 인간은 사정이 다르다.
혹자는 술에 취하면 한없이 너그럽다. 과하면 진상의 표적이 된다. 판단의 근육도 느슨해진다. 하여 술이 아니어도 취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보았다. 시각의 방향을 살짝 틀면 된다. 이를테면 사색에 취하기 같은 것이다. 단순함에 취하기도 있다. 진솔한 눈빛에도 취해보고 친절이나 양보에 취해보기도 있다. 미술 작품 감상이나 운동영화 관람과 피아노 선율에 취하기는 어떨까. 이해와 용서가 중심인 일상에 취하면 너와 나라는 이분법의 경계는 무색해질 것 같다.
일상의 소중함을 나눌 수 있는 관계는 술의 취기로 맺은 특별한 관계 이상의 가치이다. 매사에 진심이 깃들면 가면(persona) 없는 세상도 따 놓은 당상일 것이다. 주관에 함몰되지 않은 진담에 취하기야말로 살만한 세상의 밑바탕이지 않을까. 필자는 살짝 술의 신이 해준 충고에 취해볼까 한다. 모나고 뾰족한 감정들 툴툴 털어내기에 취해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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