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문 정부의 히브리스

고대 아테네 사람들은 권세 있는 자들이 권력을 지나치게 추구하여 무모한 모험을 하거나 이득을 얻기 위해 모든 것을 위태롭게 만드는 행동을 하게 되면, 신이 이들에게 '네메시스'(nemesis, 저주)를 내린다고 믿었다. 이런 저주를 초래하는 무모한 욕심을 아테네 사람들은 '히브리스'(hybris, 오만)라고 했다.

이 말의 어원은 불분명한데 호주 출신 정치학자 존 킨은 '해악' '학대' '폭압'이란 뜻의 히타이트어 '후왑'(huwap)에서 유래했을 것으로 본다. 히브리스가 권력자 자신을 파멸시킬 뿐만 아니라 그 권력자가 자기 발밑에 두려는 사람들에게 수치심을 안기는 정신적 폭력으로도 작용한다는 점에서 보면 틀리지 않은 추론으로 보인다.

이런 추론을 바탕으로 존 킨은 히브리스를 "잘못된 행동을 한 타인에게 정당한 복수를 했다는 데서 느끼는 쾌락이 아니라, 상대가 해를 입었다는 사실로 말미암아 그가 나보다 열등한 존재라는 것이 증명됐다는 데서 오는 쾌락"이라고 풀이한다.('민주주의의 삶과 죽음. 대의 민주주의에서 파수꾼 민주주의로')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이를 역사 해석학의 도구로 사용했다. 그는 문명 비교 연구를 통해 역사를 바꾸는 데 성공한 창조적 소수는 과거에 일을 성사시킨 자신의 방법이나 능력을 과신해 자기 우상화의 오류를 범하기 쉽다고 진단했다. 그는 이런 자기 과신을 '휴브리스'(hubris, hybris의 영어식 표현)라고 했다.

1977년 영국 노동당 내각의 외무장관을 역임한 신경정신과 의사 데이비드 오언은 나르시시즘과 유사한 정신적 균형의 와해로 진단했다. 지난 100년간의 영국 총리와 미국 대통령의 정신건강을 연구한 결과 변변한 경쟁자도 없이 국민의 높은 지지를 받는 경우 대개 이런 징후가 나타나는데 그는 이를 '권력을 가졌을 때만 나타나는 일시적 성격장애'로 규정하고, '휴브리스 증후군'(hubris syndrome)이라고 이름 붙였다.

청와대가 김기식 전 금융감독원장에 대한 민정수석실의 검증 실패에도 "민정수석실이 책임질 일이 아니다"라고 했다. 오만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무책임의 극치다. 더불어민주당도 마찬가지다. 김기식의 정치후원금 '셀프 기부'에 대해 위법 판단을 내린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향해 정치권의 눈치, 국민 여론의 눈치를 봤다고 원색적으로 비난하며 선거법을 손보겠다고 한다. 헌법적 독립기관에 대한 노골적 협박이다. 문재인 정부의 '히브리스'가 하늘을 찌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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