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랑살랑' 봄바람의 포근함을 닮은 드라마 한 편이 대중을 설레게 만들고 있다. 손예진과 정해인이 주연을 맡은 JTBC 금토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이하 '예쁜 누나'). 한번 들으면 잊을 수 없는, 그리고 다양하게 응용이 가능한, 인상적인 데다 정감까지 느껴지는 타이틀이다. '아내의 자격' '밀회' 등을 연출한 안판석 PD의 신작으로 극 중 남녀 주인공의 연애를 마치 관찰카메라로 지켜보는 듯 섬세하게 묘사하며 몰입도를 높이고 있다. 손예진과 정해인의 조합이 일으키는 시너지 효과 역시 기대 이상이며, 그중에서도 신예 정해인은 이 드라마를 통해 단번에 톱스타 반열로 뛰어올라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따뜻한 봄 날씨에 딱 맞아떨어지는 멜로를 리얼하게 묘사하는 데다 안판석 감독 특유의 사회 비판적인 시선까지 담고 있어 볼거리가 많은 드라마다.
◆연상녀-연하남 사랑에 열광
'예쁜 누나'는 오랫동안 '친구의 동생', 또 '누나의 친구'로 알고 지내던 남녀가 서로를 이성으로 느끼고 사랑에 빠지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멜로드라마다. 손예진이 커피 전문 프랜차이즈 본점 슈퍼바이저로 일하는 35세 윤진아 역을 맡았고, 정해인이 게임회사의 실력파 아트디렉터로 근무하는 31세 서준희를 연기하고 있다. 가족들까지 서로 잘 알고 지낼 정도로 어린 시절부터 가까운 '누나-동생' 사이지만, 서로에 대한 감정을 느낀 뒤 알콩달콩하고 또 아슬아슬한 연애를 이어가게 된다.
6회가 방송되는 동안 손예진과 정해인이 가까워지고 비밀 연애를 들키는 과정이 묘사됐다. 특히 두 주인공이 연애를 시작하는 과정을 보는 이들까지 설레게 만들 정도로 달달하게 그려내 호평을 들었다.
매회 자체 최고 시청률 기록을 갈아치웠으며 14일 방송된 6회는 닐슨코리아 전국 시청률 6.2%, 수도권 시청률 7.1%까지 치솟아 화제가 됐다. 방송사에서 프로그램 성공 기준으로 삼는 2049 타깃시청률 역시 4.1%라는 좋은 성적을 보였다. 이날 분당 최고 시청률은 8.5%까지 치솟았다. 화제성 역시 최고점을 찍었다. 굿데이터코퍼레이션이 발표한 4월 2주 차 TV 화제성 드라마 부문 1위를 차지했고, 정해인과 손예진 역시 드라마 출연자 화제성 순위에서 각각 1위와 2위에 올랐다. 방송-영화 등 매체를 넘어서 여기저기에서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라는 타이틀이 패러디돼 누구나 드라마의 인기를 체감할 수 있게 해주고 있다.
배우들에 대한 반응 역시 뜨겁다. 여전히 톱스타 자리를 지키고 있는 손예진의 연기력과 미모에 대한 칭찬이 끊이지 않고 있는 건 물론이고 특히 정해인에 대한 반응이 놀라운 수준이다. 정해인은 이 드라마에 캐스팅될 당시만 해도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스타급이 아니었다. 갓 떠오르기 시작한 참신한 신예 정도로 인식된 연기자였는데 '예쁜 누나' 2회가 방송된 후부터 상황이 확 달라졌다. 정해인의 방송 분량이 본격적으로 많아지기 시작한 회차였는데 이때를 기점으로 매주 놀라운 상승세를 보이더니 이내 정상급이라고 할 만한 또래 톱스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
아직 한한령이 깨끗하게 풀리지 않은 상태인데도 중국 내에 존재가 알려지며 국내를 넘어 해외에서까지 뜨거운 인기를 누리고 있다. 사실 멜로드라마에서 이 정도로 존재감 있는 남자 주인공 역할이라면, 어지간한 청춘스타를 두루 거치고 그들의 거절 의사를 들어가며 최종적으로 정해인에게 러브콜을 보냈을 게 뻔한 일이다. 그래서 '예쁜 누나' 이전에는 극중 '두 번째' 또는 '세 번째'에 해당하는 비중의 역할을 맡았던 정해인이 손예진의 상대역으로 낙점됐을 때 '캐스팅 과정이 순탄하지는 않았구나'라는 생각도 해봤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캐스팅이 드라마를 빛나게 만들고 있으니 가히 '신의 한 수'라고 부를 만하다. '연하남'이란 역할에 최적화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밝고 참신한 외모, 여기에 꽤나 안정적인 연기력으로 캐릭터를 살려내니 더할 나위가 없다. 비주얼 면에서 봤을 때도 손예진과의 조화가 상당히 우수한 편이고 귀염성에 남자다운 매력까지 동시에 보여주니 특히 이 드라마의 주 타깃이라 할 만한 누나 팬들을 사로잡기에 안성맞춤이다.
◆리얼한 연애 과정 묘사 눈길
안판석 PD는 2007년작 '하얀거탑'을 빅히트시킨 뒤 꽤나 긴 시간 동안 메가폰을 잡지 않았다. 5년여 시간이 흐른 뒤 현장 감독 자리로 복귀했는데 그 작품이 JTBC 드라마 '아내의 자격'이다. 이때부터 마치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한 듯 '밀회'와 SBS '풍문으로 들었소' 등 히트작들을 줄줄이 내놓으며 연출력을 새삼 입증했다. 복귀 후 줄곧 정성주 작가와 작업하며 콤비플레이를 펼쳤는데 이번 드라마 '예쁜 누나'는 신인 작가 김은과 함께하며 자신만의 색깔을 더욱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컷을 나누되 신 자체를 긴 호흡으로 끌고 가는 특유의 연출 방식은 '예쁜 누나'에서 더욱 도드라진다. 1회에서 큰 사건 없이 일상을 천천히 여유롭게 보여주는 식으로 중심인물들을 설명했는데, 심지어 손예진이 업무를 보거나 신발을 갈아 신는 등 극 전개에 크게 지장이 없는 장면까지 길게 편집하며 기존의 드라마와 확연히 다른 기법을 구사했다.
대개 미니시리즈 1회라고 하면 소위 '빵 터질 만한 신'들을 전면 배치해 마치 '이번 회차가 마지막인 양' 최고의 재미를 시청자에게 선사하려 안간힘을 쓰기 마련이다. 잠시만 지루해지면 채널이 돌아가고 한 회차만 진행이 늘어져도 다음 회차의 시청률까지 떨어지는 경우가 흔한 드라마 경쟁 시장에서, '연출 의도'를 어필하며 느린 진행을 택하는 건 솔직히 위험천만한 일이다. TV 시청자들은 극장에 들어가 약 두 시간에 걸쳐 스크린에 집중하는 관객들과 달리 언제든 TV 앞을 떠나거나 리모컨을 움켜쥔 채 채널을 돌릴 준비가 돼 있다. 이런 상황에서 보여준 안판석 감독의 여유 넘치는 연출은, 그래서 더욱 인상적이었다. 전주부터 시작해 2절이 끝날 때까지 끊어지지 않고 흘러나오는 올드팝, 그렇게 BGM(배경음악)이 깔리는 와중에 특별한 대사 없이 카메라 앞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는 인물들. 심지어 남녀 주인공이 재회하는 장면에서 흘러나온 대사는 채 몇 줄이 되지도 않는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의 동생'을 보고 반갑게 웃는 손예진, 자전거를 탄 채 그 앞을 이리저리 맴돌며 해맑은 표정을 짓는 정해인을 꽤나 길게 보여줬다.
대개의 멜로드라마에서 절대 쓰지 않았던 방식인데 어쨌든 이런 연출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기 위해 한 걸음씩 다가서는 인물들의 감정을 드러내는 데 유용하게 쓰였다. 드라이브를 하던 중 서로 손을 잡을까 말까 망설이는 인물들을 마치 롱테이크(컷을 나누지 않고 길게 찍어 보여주는 기법) 촬영을 했다고 느껴질 정도로 길게 보여주며 시청자들을 상황에 빠져들게 이끌었다. 고백을 하지 못해 상대의 마음에 대한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 탐색전을 펼치는 과정, 그리고 동료들 앞에서 몰래 손예진이 정해인의 손을 잡아주며 속내를 알려주는 신 역시 유사한 방식으로 연출해 보는 이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농담 삼아 '극 사실주의'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리얼하게 연애 과정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이미 몇 가지 복선이 깔린바, 앞으로 '예쁜 누나'는 남녀 주인공이 장애물을 만나 갈등하는 과정을 보여줄 것으로 보인다. 이들이 사회생활을 하며 겪는 부조리 등에 대한 에피소드까지 더해질 듯한데 어쨌든 두 주인공의 감정선만 잘 끌고 간다면 어떤 내용이 등장하더라도 몰입도가 떨어지진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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