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속사회』/엄기호/창비/2014
식당에서 가끔 보는 풍경이다. 부모는 밥을 먹고 있는데, 먼저 먹은 자녀는 스마트폰에 함몰되어 있다. 커피숍에서도 흔히 본다. 대여섯 명이 테이블을 둘러싸고 있지만, 그중 한두 명은 대화에 관심이 없고 SNS에 힐끗힐끗 접속한다. 같은 공간에 있어도 상대방과 단절한 상태다. 상대가 부모이든 친구이든.
『단속사회』는 '관계 단절'의 정체를 밝힌 책이다. '곁'을 중시하는 저자 엄기호가 21세기 한국사회의 단면을 사회학 관점으로 관찰했다. 제목에서 '단속'은 남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철저히 자기를 단속(團束)한다는 뜻과 끊임없이 차단하고 쉴 새 없이 접속하는 단속(斷續)의 뜻, 두 가지를 의미한다. 저자가 말하는 단속사회란 개인과 개인이 서로 소통하지 못해 관계가 끊긴 사회이다.
엄기호는 자신의 강의 후일담, 해직당한 김정수 씨 이야기, 밀양 고압송전탑 설치문제 등 현실 곳곳에서 소재를 가져왔다. 이들 사례에서 타인의 현실을 외면하고 빗장을 건 사냥꾼 사회, 한국사회를 통찰한다. 여기에 지그문트 바우만, 김영민, 존 듀이 같은 사회학, 철학, 교육학 전문가들의 견해로 현상을 설명한다.
책이 말하는 한국사회는 어떤 사회인가? '고통'과 '자기 이야기'가 넘쳐 나지만, 내가 남의 아픔과 경험을 외면하기 때문에 남도 내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다. 그 결과 사람과 사람, 경험과 경험, 과거와 현재가 단절된다. 경험을 전승하지 못 하는 연속성 없는 사회, 단속사회 한국의 모습이다. 여기에서 개인은 고립되고, 그래서 외롭다. 개인과 사회 모두 성장도 불가능하다.
내가 받는 고통을 남들도 받는다면 이 고통은 사적인 문제가 아니라 공적인 문제이다. 그러나 '말 걸기'에 익숙하지 않은 개인은 고통을 공유하지 못하고, 자신의 문제를 공적 이슈로 만들 능력도 없다. 폭로하고 매장하는 문화가 사회 전반에 흐를 뿐, 공적 문제를 '공론장'에서 해결하지 못한다. 저자가 밝히는 단속사회의 또 다른 문제다.
그렇다면 어떤 사회가 존속하고 성장하는가? '연속성' 있는 사회는 성장한다고 책은 강조한다. 그 기본은 경청이다. 타인의 말을 경청할 때 서로의 경험이 서로에게 '참조점'이 되며 경험을 전승할 수 있다. 이런 사회에서 개인은 파편화된 에피소드가 아니라 연속하는 서사로서의 자기 삶을 가지고, 더 나아가 삶을 예측하고 기획한다. 사회도 존속하고 성장한다.
취향 공동체나 문화 공동체에서 소비하는 '함'에 지친 독자에게 『단속사회』를 추천한다. 책장이 술술 넘어가지 않고, 하루 굳은 백설기처럼 문체가 좀 딱딱하다는 것은 미리 밝힌다. 두루두루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배우기 좋아하는 저자의 마음은 문장 하나하나 부드럽게 다가올 것이다.
과잉 차단하며 '나'와 무관하다 여겼던 타자성에 접속해서, 진정성으로 그들의 내면세계를 경청해 보자. 독자 '곁'에 동료·친구·자녀가 있고, 우리들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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