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화수분

1925년 '조선문단'에 발표된 전영택의 소설 '화수분'은 1920년대 비극적인 상황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수작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화수분이라는 이름을 가진 행랑아범은 궁핍함을 이기지 못하여 큰딸은 쌀가게 아주머니에게 주고, 결국 내외도 눈밭에서 얼어 죽고 만다. 다만 얼어 죽은 내외의 품속에서 둘째 아이가 살아나는 것으로 소설이 끝나면서 비극적 상황 속에서도 따뜻한 인간애를 읽을 수 있다.

행랑아범의 이름 '화수분'은 재물을 넣어두면 계속해서 그 재물이 생겨서 아무리 써도 줄어들지 않는 설화에 등장하는 보물단지를 이른다. 평생 돈 한 번 제대로 만져보지 못한 사람의 이름이 평생 돈 걱정 없이 살 수 있게 할 수 있는 물건인 화수분이라는 이름을 가진 것은 비극적 상황을 극대화하기 위한 반어적인 설정이라고 할 수 있다.

화수분 설화는 여러 지역에서 다양한 형태의 이야기로 전해져 내려오는데, 약간의 변형은 있지만 이야기의 골격은 대체로 비슷하다. 가난하지만 착하게 사는 주인공이 도둑질의 유혹을 이겨냈거나 불쌍한 짐승을 살려주거나 해서 그에 대한 보답으로 화수분을 얻게 된다. 화수분의 효능을 알게 된 주인공은 가난을 벗어나게 되지만 주인공 주변의 인물들이 정해진 것 이상을 얻으려고 하는 탐욕을 부리게 되면서 화수분의 효능은 사라진다는 것으로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황금 알을 낳는 거위 이야기와 비슷한 이런 이야기가 만들어진 바탕에는 먹고사는 걱정 없이 사는 것을 최고로 생각하던 민중들의 소망과 탐욕에 대한 경계 심리가 있다.

그런데 현대 경제의 관점에서 이 이야기를 해석해 보면 화수분과 같은 물건이 있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화수분에서 돈이 계속해서 생겨나고 그 돈을 시장에 유통시키게 되면 시장에서는 수요와 공급의 변화에 따른 조정이 일어난다. 그렇게 되면 물가가 상승하게 되고, 출처도 모르는 돈이 유통됨으로 인해 화폐에 대한 신용이 떨어져 부동산이나 금값이 급등하는 것과 같은 엄청난 경제 교란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

얼마 전 한 증권사에서 실체도 없는 주식을 직원들에게 배당해 주고, 직원들이 그것을 판 사건은 화수분 이야기가 실제로도 실현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다른 사건들에 묻혀서 더 이상 이야기가 되지 않고 있지만 현대의 화수분은 시장경제 체제를 위협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화수분 이야기가 합당한 이야기가 되기 위해서는 화수분에서 나온 재물이 새롭게 생겨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재물에서 빼온 것이라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이것은 도둑질처럼 보이기 때문에 매우 불편하다. 가장 정당하고 행복한 화수분 이야기는 화수분에서 재물이 계속 생겨난 이유가 자신의 정당한 노동 때문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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