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한진, 타력갱생이다

'1955년 여름 서울~인천 국도를 달리던 조중훈은 부평 근처에서 도움을 청하는 세단 하나를 발견하고 멈추었다. 엔진 전문가인 그는 고장 난 차 밑에 들어가 이것, 저것 원인을 찾아보고…밸브를 조정해본 결과 시동이 걸렸다…세단에는 미군 고위층 부인이 타고 있었는데 후일 부인은 조중훈에게 남편을 소개해 주었다. 그는 이날의 인연을 계기로 미 군수물자의 수송권을 획득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이한구, '한진그룹 형성과정 연구', 1995년)

지금 한진(韓進) 기업집단의 창업자 조중훈은 기술을 믿고 1945년 11월 1일 한진상사를 세웠고 이런 인연을 바탕으로 1956년 11월 1일 계약 서명한 7만달러짜리 미군 물자수송권을 도약의 발판으로 삼았다. 특히 그는 창업 이후 장사에서 신뢰라는 자산의 중요함을 터득했다.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된 터 위에 재기할 때 도움받은 일과 미군과의 끊임없는 신뢰 쌓기 노력에 대한 언론 증언(1994년)은 이를 잘 드러냈다.

'남은 것은 쑥대밭이 된 땅과 은행부채뿐이었다…초창기부터 다져놓았던 신용만이 나의 재기를 밑받침해 주는 전부일 수밖에 없었다…전쟁 전의 신용을 인정받아 무담보로 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 단골들도 기꺼이 도움을 주었다…한번 알게 된 사람이 임기를 마치고 귀국할 때에는 집으로 초대했다…인간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관계를 맺고자 했다.'

25세에 사업에 나서 신뢰로 오늘날 재벌 순위 15위의 한진과 대한항공을 일으킨 창업주 조중훈의 기업 정신이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 특히 장남(조양호)의 두 딸(조현아'조현민)과 외아들(조원태)의 짓거리 탓이다. 이들 모두 창업주처럼 일찍 장사의 길에 나섰다. 20대에 대한항공에 들어갔고 임원도 불과 몇 년 만에 달았다. 그야말로 초고속 승진이 아닐 수 없다. '금수저' 직장도 모자랐는지 요즘 드러나는 일을 보면 아찔하다. 각종 새 의혹도 잇따르고 있다.

이런 의혹을 모으려 최근 '대한항공 갑질 불법 비리 제보방'이라는 공간도 마련된 모양이다. 대한항공 총수 일가를 둘러싼 뭇 제보가 쏟아질 것으로 보여 사람들 관심은 물론 수사기관도 촉각이니 앞으로 밝혀질 소식이 궁금할 뿐이다. 벌써 관세청은 이들 3남매 등 한진 총수일가 자택과 대한항공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조직적인 탈세 의혹을 따지기 위함이다. 어느덧 창업주의 신뢰는 무너지고 후계자의 탐욕만 가득한 한진의 앞날은 더욱 분명할 듯하다. '타력갱생'(他力更生)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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