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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신문 속 여성] 90년 전에도 '태움' 있었다

동아일보 1928년 2월 27일 자
동아일보 1928년 2월 27일 자
최세정 대구여성가족재단 연구위원
최세정 대구여성가족재단 연구위원

"얼마 전 간호사 한 명이 '태움'이라는 잘못된 관행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신입 간호사를 길들인다는 명목으로 괴롭히는 문화는 간호사 직업군 내에선 그리 낯선 풍경이 아니란다. 그 너머에는 높은 노동강도의 간호사 직업의 민낯이 있다. 유해물질에 노출되며 높은 업무 강도를 견뎌야 하는 것은 일상이다. 출산도 순번제로 해야 하며 병원 수익 창출을 위해 자료를 만들어야 하고 위염, 방광염 같은 직업병은 달고 살아야 한다."

얼마전 출간된 책 '나는 간호사, 사람입니다'에 나오는 내용이다.

간호사의 힘겨운 일상은 비단 오늘날의 문제일까. 90년 전 간호사의 일상을 들여다보기 위해 옛 신문을 펼쳤다. 동아일보 1928년 2월 27일 기사에는 '여자직업탐방기'의 일환으로 '천사를 생각지 아니할 수 없다'고 찬양하는 간호사에 대해 싣고 있다.

근대기 신문의 특징은 굉장히 직설적이고 단정적인 표현이다.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거리를 두는 요즘 신문의 어투와는 다르다. 오히려 극적 효과를 높이는 과장된 문구와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이 기사에도 그런 면을 볼 수 있는데, "그들에게도 창자가 끊어질만한 직업적 비애가 굽이굽이 숨어 있다"고 소개한다.

당시 '간호부'라고 불리던 간호사들에게 어떤 직업적 비애, '원한과 저주'가 숨어 있었을까.

첫째는 의사의 인격적 압박이다. "간호부는 거진 의사의 종과 같이 대우받는다. 그 압박이 정도를 초과하게 될 때 남모르는 눈물이 흐르게 됩니다. 그 직업을 집어던지면 좋겠지마는 생활난의 위험이 계속되는 한에는 그렇게 마음대로 그만두지 못하게 된다"고 말한다.

특히 당시 남성 의사가 대부분을 차지하던 시절, 성적 희롱 문제도 큰 문제였다. 1950년 의사면허등록자 중 여성 비율이 7.4%에 불과했으므로 1920년대에는 대부분 의사가 남성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인격이 없는 야비한 의사의 성적 희롱에 짓밟힐 때도 있다"면서 "그의 요구를 거절하는 날이면 그 병원에서 나오는 날"이라면서 "불행히 아이를 배면 상대자는 자기의 명예를 보존하기 위해 낙태술을 쓰는 일도 있고, 낙태술이 잘못되어 생명을 잃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는 것.

또한 죽음을 늘상 목격하는 일도 간호부의 큰 어려움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자기가 간호하는 동안에 서로 정든 사람이 죽을 때 어찌 아니 울고 견딜 수 있겠는가"하고 반문한다.

90년의 시간동안 세상은 더 살만해졌는가. 적어도 '간호사'의 직업 속에선 큰 차이가 없어보인다. 오히려 그 힘겨움을 해소하는 방안으로

'태움'이라는 비뚤어진 관행까지 생겨났다. 우리 사회는 더 살만해지고 있는가. 그 대답은 우리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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