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축제의 계절. 행사장에서 가끔 각설이 공연을 볼 수 있다. 각설이는 누더기 거지 복장을 하고 익살스러운 춤을 추며 재담과 타령으로 웃음을 선사한다. 때론 북을 치고 장구를 치면서 꽹과리도 치는 만능 재주꾼이다. 많고 많은 직업 중에 하필 왜 각설이로 살아갈까. 본래 각설이는 깨달은 이치를 세상에 알린다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대부분 각설이는 힘겨운 사연 하나쯤은 품고 살아간다. 세상에 대한 분노가 있을 수도 있고 자신의 찌질한 인생에 대한 원망이 있을 수도 있다. 이런 응어리진 한을 풀고 세상을 깨우치기 위해 각설이를 하는지도 모른다.
최근 대구에서 새터민 출신 각설이 부부가 화제를 모으고 있다. 주인공은 이양반(54)손풍금(47) 씨로 남편 이 씨는 한국인이고 아내 손 씨는 북한 이탈주민이다. 작년 부부의 연을 맺고 각설이 인생을 함께 걷고 있다. 이들 부부의 유쾌한 각설이 삶을 들여다보자.
◆거지 품바에 문양역 들썩
이 씨 부부는 토일요일이면 도시철도 2호선 문양역 마당에서 어르신들을 위한 각설이 공연을 한다.
남편은 알록달록한 천을 꿰맨 누더기 복장을 하고 얼굴에는 점식이 분장을 해 천상 거지 같은 모습이다. 허리춤엔 찌그러진 깡통과 막걸리 잔을 주렁주렁 매달아, 몸을 움직일 때마다 땡그랑 소리가 난다. 아내는 꽃머리띠를 하고 얼굴에 곤지를 찍고 빨간 한복을 입었다. 복스러운 아기 돼지같아 정겹다.
먼저 남편이 밥주걱을 들고 어릿광대처럼 춤을 추며 '엽전 열닷냥' 노래를 불렀다. 주위 어르신들이 흥에 겨워 들썩들썩 어깨춤을 추었다. 아내는 남편 뒤쪽에서 엿가위를 잡고 '짝~ 짝~' 장단을 넣었다. 망가진 남편의 춤사위와 사뿐사뿐한 아내의 몸짓이 어우러진 품바 가락은 절정에 달했다. 노래가 끝나자 어르신 한 분이 엿을 사주었다.
"어르신, 대구시장도 엿 한 번 안 사줬는데~ 이 거지를 위해 엿을 사주어 고마워이~" 남편은 신나서 '백세 인생' 노래를 쭉 뽑았다.
◆한 풀기 위해 각설이 길로
"거지 행세를 하고 왜 요카는 지 아슈? 안 그러면 속이 터질 것만 같소. 북을 죽으라 때리고 춤이라도 정신없이 추어야 살 것 같소."
남편은 각설이가 그냥 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겉으론 흥이 나서 신나게 노는 것 같지만 속마음은 응어리가 가득 차 있다고 한다. 그는 40대 중반에 각설이 길을 택했다. 30대에는 일회용 도시락 제조업을 하던 사장이었다. 하지만 시장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했다. 한 방에 회사가 날아가버렸다. 행복하고 단란했던 가정도 깨져버렸다. 한동안 방황도 했다. 그렇다고 죽을 수도 없었다. 살기 위해 길에서 빵도 굽는 노점상도 했다.
"품바를 해보자. 인생의 한이라도 풀어봐야지." 그는 독학으로 품바 춤과 북, 장구 치는 법을 인터넷을 통해 배웠다. 분장하는 법, 누더기 옷 만드는 법도 하나씩 익혔다. 아내는 20대에 탈북하다 중국에서 공안에 잡혀 북송당하고 인신매매단에 걸리기도 했다. 탈북 4번 만에 한국행에 성공했다. 각설이를 하면서 아픈 마음을 씻어내고 있다.
◆각설이는 망가질수록 재미
"각설이는 전투복(누더기 옷)을 입으면 마음이 편안한기라. 무슨 말을 해도 이해해주니까."
각설이는 폼생폼사로 산다. 반말을 해도 받아주고, 눈물을 흘려도 부끄럽지 않다. 관중이 팁을 줄 땐 무릎을 꿇고 받는다. 자신을 낮출 수 있는 사람만이 각설이를 할 수 있다는 것. 웃기기 위해선 망가질수록 관중의 호응도가 더 높다.
"백화점에서 옷 한 벌 샀다고 누가 노래 한 곡 불러주기나 하나. 각설이는 3천원짜리 엿 한 봉지 사줘도 거시기 떨어지도록 춤추고 노래도 불러주지."
그는 전투복을 집에서 직접 만들어 입는다. 개량 한복에 천을 덕지덕지 붙여 최대한 거지 옷답게 만든다. 부부의 전투복은 50벌 정도 된다. "전투복은 행사 성격에 맞게 입지. 동창회 같은 행사에서는 여장을 할 때도 있어."
부부는 전통 각설이를 고집한다. 요즘은 돈만 좇는 퓨전 각설이가 판을 치고 있다. 하지만 희로애락을 표현하는 데는 전통 각설이가 훨씬 심금을 울린다고 그는 강조한다.
◆보람은 있지만 힘겨운 삶도
"각설이 하고 나서 길거리에서는 정말 밥을 못 먹겠지라. 진짜 거지된 느낌이 드니까."
남편은 10년째 각설이를 하고 있다. 각설이의 최고 장점은 보람이다. 처음 각설이를 할 때는 부끄러워 관객들을 쳐다보지도 못했다. 하지만 관객이 내 재주를 보고 호응을 했다. 직업을 잘 선택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국에는 공식적인 각설이가 1천 명 있다. 대구경북에는 60여 명이 활동한다. 경기 침체로 행사가 줄어 수입이 줄고 있다. 그렇다보니 각설이들의 경쟁이 치열하다. 요즘 2인 1조로 출연할 경우 보통 45만원 정도 받는다. 수입의 40%는 의상, 메이크업, 몸관리 유지비로 나간다.
갈수록 살아가기가 힘들다. "뭐 할짓이 없어서"라는 사회의 싸늘한 시선이 두렵다. 심지어 분장을 지우지 않고 식당에 가면 거지라고 밥도 안 줄 때가 있단다. 그는 세상이 품바를 불쌍하게 바라보지 말아주기를 바라고 있다.
'♣전국 두 번째' 새터민 출신 각설이 손 씨
새터민 각설이 손풍금 씨는 평소 수줍음이 많고 말씨가 어눌하다. 새터민 각설이로는 대구경북에서 유일이며 전국 2호다. 공연장에 나가면 관객들의 시선이 쏠린다. 각설이 활동은 1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노래하는 억양이 좀 달라 많은 관심을 받는다. "혹시 조선족?" 대부분 관객들은 그가 중국에서 온 조선족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그는 2007년 탈북해 11년째 대구에 정착해 살고 있는 새터민이다.
그의 고향은 함경북도 회령이다. 아버지는 김일성 시대 공기업에 다닌 공산당 간부였다. 그는 5남매 맏이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항상 진심으로 대하라"며 정직한 삶을 가르쳤다.
그가 대학교 진학하는 시기에 일이 틀어졌다. 경제대학에 가고 싶었던 그는 시험 점수가 10등 내에 들 만큼 공부를 잘했다. 합격은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다른 공산당 간부들은 대부분 돈을 써서 자식들을 경제대학 뒷문으로 넣었다. 뒤늦게 그런 분위기를 안 그는 아버지한테 "뒷돈을 써서라도 입학시켜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정직한 아버지는 딸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는 결국 경제대학에 가지 못하고 컴퓨터 관련 대학에 진학했다. 하지만 적성이 맞지 않아 학업을 중도 포기했다.
그는 "공산당 간부들 사이에는 횡령 등 부조리가 만연돼 있다. 횡령한 금품을 상납하면서 자신의 입신을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 아버지는 횡령을 못 하고 윗사람에게상납도 못 했다"고 했다.
결국 아버지는 정권이 바뀐 김정일 시대에 당 간부직을 박탈당했다. 그때부터 그의 집안은 급격히 기울고 말았다. 맏이인 그는 28살 때 돈을 벌려고 브로커를 통해 몰래 중국에 넘어갔다. 하지만 중국에서 공안한테 잡혀 3차례나 북송당했다. 마지막 탈북 때는 인신매매단에 걸렸다. 8년간 중국에서 도망도 못 가고 처절하게 살았다. 그러다 2007년 탈북지원단체를 통해 라오스, 태국을 거쳐 한국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그는 대구에 정착한 뒤로 10년간 식당일을 해왔다. 휴일도 쉬지 않고 하루 10시간 이상 악착같이 일했다. 그러던 중 지난해 초 각설이 남편을 만나 부부의 연을 맺게 됐다. 그는 "남편을 따라 각설이를 배우고 전국 공연을 다니며 꽃구경을 하는 게 즐겁다"면서 "저도 이제 대구시민으로 살고 있는 만큼 다르게 보지 말고 일반시민으로 봐주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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