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4월 21일부터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를 중지하고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회담 분위기 조성을 위한 조치로서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그러나 북한의 이번 동결조치 발표 어디에도 김정은이 북핵 해법으로 제시한 '단계적 동시조치'를 포기했다는 말은 보이지 않는다. 미국은 리비아식 해법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 북한과의 핵 관련 합의가 모두 검증문제 때문에 실패로 끝났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1993년 3월 NPT 탈퇴선언을 하게 된 것도 결국, 북한이 안전조치협정에 따라 IAEA에 신고한 '최초 보고서' 검증과정에서 북한의 속임수가 발각되었기 때문이다. 1994년의 미-북 제네바 합의는 검증완료 시기를 경수로 '핵심부품 제공' 시점까지 미루어 놓았다가, 2002년 농축 우라늄을 이용한 핵 프로그램이 노출됨으로써 무위로 돌아갔다. 6자 회담은 2005년 9'19 공동성명에 합의하고, 2007년에는 이의 이행을 위한 2'13 합의와 10'3 합의를 도출해 냈으나, 이 역시 검증 방안에 합의를 보지 못함에 따라 실패로 끝나 버렸다.
리비아식이 일반적으로 리비아의 굴욕적 핵 포기로 알려져 있지만, 실은 리비아가 핵을 포함한 대량살상무기(WMD) 폐기에 진정성을 보임에 따라 미국이 단계적으로 보상하는 구조였다. 리비아는 2003년 12월 19일 핵을 포함한 WMD 포기 선언을 하고, 한 달 후인 2004년 1월 27일 핵 및 미사일 관련 물질과 서류 5만5천파운드를 미국으로 반출한다. 이에 미국은 2월 26일 대(對)리비아 여행금지 조치를 해제하고 외교관계 수립 가능성을 제안한다. 3월 10일 리비아는 강화된 IAEA 검증장치인 '추가의정서'에 서명하고, 의정서 발효 이전이라도 동 의정서에 따른 사찰을 받겠다고 약속한다. 이에 유엔 안보리는 리비아의 핵 폐기 진정성을 칭찬하는 의장성명까지 발표한다.
미국은 그해 6월 28일 외교관계를 재개할 것임을 발표하고, 주리비아 연락사무소를 개설한다. 9월 20일에는 대리비아 제재를 대부분 해제하고, 22일에는 검증이 본질적으로 완료되었음을 선언한다. 정식 대사관 설치는 2년 후인 2006년 5월에 이루어지지만, 미국은 리비아의 핵 포기 선언 2개월 만에 일부 제재(여행금지)를 해제하고, 6개월 만에 연락사무소까지 개설하였다. 핵 폐기와 보상이 모두 신속하게 이루어진 모범사례다.
핵 개발을 추진 중이던 리비아와 6차 핵실험까지 감행한 북한을 동일 선상에 놓고 비교할 수는 없지만, 리비아 사례는 북한이 핵 포기에 대한 진정성만 보여 준다면 상응하는 보상도 신속히 제공될 수 있음을 잘 보여준다. 따라서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을 통하여 마련될 북핵 합의문서는 북의 핵 포기 약속과 그 약속의 진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검증장치 마련에 중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북의 핵 포기 약속의 진정성은 첫째 북한이 제출할 핵 활동 신고서 및 핵 폐기 계획서가 얼마나 사실에 입각한 것인지, 둘째, 철저한 검증합의서 채택에 얼마나 성실히 임하는지, 셋째, 핵 및 미사일 동결과 불능화, 핵무기 폐기, 핵 관련 시설 및 물질의 해외반출에 이르는 핵 폐기 과정을 얼마나 신속하게 수행하는지 등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핵 폐기 대가로 제공할 정치'경제적 보상은 북이 기꺼이 핵과 맞교환하고 싶을 정도로 아주 매력적인 것으로 준비하고, 핵 폐기의 진정성이 확인되면 북의 체제 보장과 관련된 조치는 단계적으로 진척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경제적 보상은 핵 폐기 검증이 완료된 후에 하여야 하며, 불이행 시에는 더욱 강력한 제재를 가하여야 할 것이다. 특히 검증 완료 전 제재 조치 완화는 금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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