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이젠 밥, 그리고

'위대한 영도력의 비결이 뭡네까?' '머를 마이 멕이야지(뭣을 많이 먹여야지).'

2005년에 나온 영화 '웰컴 투 동막골'에서 북한 인민군 장교와 동막골 촌장이 주고받은 대화의 한 토막으로 한동안 세상에 널리 회자됐다. 산골 사람들이 잘 어울려 재미있게 살아가는 모습에 마을 지도자 촌장에게 비결을 묻자 사람들 배를 부르게 하는 일이 어떤 영도력보다 좋은 비결이라고 들려준 신(神)의 한 수 같은 대답이다.

백성을 많이 먹이고 배부르게 하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최우선이었다. 특히 농사에 매달렸던 우리 민족에게는 더욱 그랬다. 조선의 임금 가운데 가장 백성을 아낀 세종은 그 표본이다. 세종은 아예 '나라는 백성을 근본으로 삼고, 백성은 먹는 것을 근본으로 삼는다'며 온 신하가 농사에 관심을 쏟으라며 글로 내렸다. 권농교서(勸農敎書)가 나온 까닭이다.

종교 지도자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나라 첫 토착 종교이자 백성을 하늘처럼 섬긴 동학(東學)의 지도자 최시형도 그랬다. 최제우가 창시한 동학을 이끌고 백성이 살맛나는 평등 세상을 만드는데 삶을 바친 최시형의 '밥' 철학이 그렇다. 그는 '하늘은 사람에 의지하고 사람은 먹는데 의지하니, 만사를 안다는 것은 밥 한 그릇 먹는 데 있다'고 했다.

지난 20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앞으로 경제 건설에 힘쓰겠다는 정책을 결정했다. 핵'경제를 함께 하겠다는 종전의 '병진노선'에서 핵은 나름 성과를 거두었으니 '결속'(結束)하고 이제 먹고사는 일인 경제 건설에 집중하겠다는 뜻을 내보인 듯하다. 이런 정책 변화가 어떤 결실을 거둘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민생에 눈을 돌리겠다니 기대할 일이다.

이런 김정은 위원장이 27일 문재인 대통령과 만나기 위해 처음 남쪽 땅을 밟고 판문점 '평화의집'을 찾는다. 비록 김영삼 대통령과 할아버지 김일성과의 1994년 7월 25~27일 정상회담은 김일성의 죽음(1994년 7월 8일)으로 무산됐지만 김대중(2000년)'노무현(2007년) 대통령과 아버지 김정일의 잇단 만남까지 따지면 3대의 남북 정상회담이다.

이번 만남으로 일제 식민지배에서 벗어나려 어쩔 수 없이 걸었던 서로 다른 이념과 사상을 넘어 광복 이후 갈라진 한민족 모두 배부르고 '마이 멕이는' 길을 찾았으면 좋겠다. 이날 발길이 또 다른 걸음으로 이어져 적대 국가였던 동'서독이 1970년 두 차례 정상회담을 갖고 1990년 통일한 것처럼 '아름다운 강산'의 역사 물줄기를 돌렸으면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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