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공천=당선' 인식·계파 정치, 경선 원칙 무너지기 일쑤

선거 때마다 공천 파행 재연…계파 친소 관계로 공천 결정, 노골적인 특정후보 밀어주기

24일 오후 자유한국당 경북도당 사무실에서 구미시장 김봉재 예비후보 지지자들이
24일 오후 자유한국당 경북도당 사무실에서 구미시장 김봉재 예비후보 지지자들이 '자유한국당 사망'이라 적은 관을 내려놓은 채 공관위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우태욱 기자 woo@msnet.co.kr

대구경북(TK)을 텃밭으로 삼고 있는 자유한국당의 공천 파행이 선거 때마다 반복되고 있다. 선거 때마다 반복되는 악습이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또다시 재연되는 모습을 나타내면서 지역민들은 "도대체 TK가 기댈 정치 세력은 어디인가?"라는 물음을 심각하게 던지고 있다.

가장 최근에 치러진 전국 단위 선거였던 2016년 20대 총선. 박근혜 정부 때였던 당시 새누리당은 인물 공천이 아니라 친이계 및 '멀박'(멀어진 친박) 배제하기 식 공천 심사를 했다. '진박'이라는 이름으로, 박 전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린 인사들이 대거 공천장을 받았다. '배신자 프레임'에 갇힌 유승민 의원은 피 말리는 공천관리위원회의 시간 끌기 끝에 결국 탈당해야 했다. 진박 명찰을 스스로 단 후보들이 이른 아침 대구의 한 식당에 모여 사진을 찍으면서 진박임을 과시하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박 전 대통령 재판에 출두했던 관련 증인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유 의원을 공천에서 배제시키기 위해 상대 후보였던 이재만 전 대구 동구청장을 노골적으로 밀어주는 작업이 진행되기까지 했다. 이와 관련해 유 의원 측근으로 분류되는 류성걸(단수추천 탈락), 김희국(경선 배제), 권은희(경선 배제) 의원도 줄줄이 잘려나갔다.

그러나 이러한 마구잡이 공천 구도 속에서도 TK 지역민들은 당시 새누리당에 또다시 몰표를 줬다. 이때 불거진 심각한 공천 후유증은 여당인 새누리당(한국당의 전신)을 패하게 했고, 결국은 보수 분열의 단초가 돼 정권을 내주는 원인이 됐다.

시간을 거꾸로 돌려봐도 상황은 비슷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 당선 4개월 뒤 치러진 2008년 18대 총선을 앞두고 대구경북에서는 홍사덕'박종근'이해봉'이인기'김태환 의원 등 2007년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 당시 박근혜 후보를 지지했던 친박 인사들이 대거 공천에서 탈락했다. 친박계는 정치 보복, 친이 공천이라며 강력하게 반발했다. 박 전 대통령은 "살아서 돌아와 달라"는 메시지를 던지며 "저도 속고 국민도 속았다"는 말로 공천을 힐난했다. 2012년 총선은 이명박 대통령이 '식물 대통령'이 된 뒤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전권을 휘둘렀고 친이계에 대한 보복 학살로 귀결됐다.

공천 파행은 지방선거에서도 재연됐다. 2014년 6'4 지방선거 공천에서 경북 일부 기초단체장은 내정이 철회되거나 경선 후보 자격을 박탈당하는 등의 사례로 공천 앓이를 했다. 청송 등은 무공천으로 아예 후보를 내지 않기도 했다. 경북도당 공관위가 여론조사 경선을 치르기로 했으나 중앙당이 뚜렷한 설명 없이 경선 중단을 결정한 탓이었다.

선거 때마다 공천 파행이 되풀이되는 것은 '공천=당선 지름길'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당권 경쟁과 계파 정치, '제 사람 심기 식'으로 공천이 얼룩지고 있다는 지적이 들끓어도 한국당은 전혀 변화가 없다. 객관적이고 엄격하게 적용돼야 할 원칙들이 무너진 영향도 크다. 그럼에도 공천 책임자들은 "공천자는 한 명이고 나머지는 탈락하니 당연히 시끄럽고, 그 말이 더 크게 들릴 수밖에 없다"며 '공천 잡음'은 공천 과정에서 발생하는 당연한 현상이라고 여기고 있다.

한 전직 국회의원은 "객관적이지도 공정하지도 못한 데에서 비롯된 공천 파동은 정책과 공약이 사라진 선거를 만들고, 결국 그 피해의 몫은 유권자들에게 돌아간다. 한국당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지역민들도 이들에게 채찍을 들지 못하고 있다"고 한탄했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