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 시위대는 사드 반입 막고, 정부는 꼼수 쓰고

정부가 성주 사드(THAAD) 기지 앞에서 농성하는 참가자를 해산시키는 과정을 보면 정부에 대한 신뢰와 공권력의 존재 의의에 회의감이 든다. 3천 명의 경찰 병력을 동원해 200명이 채 못 되는 농성자를 어렵게 쫓아내는 것까지는 농성자의 안전을 고려하면 그런대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군사작전 하듯이 농성자를 해산시키고는, 사드 기지에 반입한 것이라곤 공사용 차량 22대뿐이었다. 국방부가 사드 반대 단체와 주민들에게 기지 내에서 '생활 여건 공사'만 하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에 '작전용 공사 장비'는 반입하지 않았다고 하니 어이가 없다.

23일 경찰과 시위대 충돌에서 나타났듯, 기지에 장비를 반입하려면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지난해 4월 성주에 사드가 배치되기 시작해 시위대와 경찰이 충돌한 것은 모두 여섯 차례다. 이달 들어 국방부가 '생활 여건 공사'를 위한 장비 반입을 시도하면서 세 차례 충돌했지만, 경찰이 많은 병력을 동원하고도 매번 쩔쩔매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앞으로 새로운 시설이나 추가 시설이 필요하면 또다시 대규모 경찰 병력을 동원해 해산작전을 벌여야 한다는 말인데, 가슴이 먹먹해지는 대목이다. 도대체 어느 나라가 국가 정책을 수행하면서 도로를 막고 있는 불법 시위대와 약속을 하고, 이를 지키려고 애쓰는지, 그런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요즘에는 불탈법이나 원칙보다는 시위대의 무제한 자유를 더 중시하는 세상이 돼 있다.

사드 문제는 개인에 따라 찬반이 갈릴 수 있다. 그렇더라도 정부의 약속과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 지난해 6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사드 배치를 '한미동맹 차원의 약속'이라 확약하고는, 어정쩡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신뢰 문제와 직결된다.

아무리 지지층의 반대가 있더라도, 일단 원칙을 세우고 결정했다면 제대로 추진해야지, 이 눈치 저 눈치 보는 것은 어설픈 잔재주에 불과하다. 시위대에 의지해 미국 항의를 벗어나려는 것인지, 시위대를 이용해 중국 눈치를 살피는 것인지 알 수 없으나 국가의 품격을 떨어뜨리는 일임은 분명하다. 정부는 사드 문제와 관련해 원칙과 신뢰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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