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추억의 요리 산책] 두릅

"너희는 산이 높고, 골이 깊은 데서 자랐기에 마음이 깊을 것이다." 아버지의 말씀은 늘 가슴 언저리에 남아 있다. 그러나 어이하리, 하늘만 빠끔하게 보이고 산으로 꽉 막힌 곳에서 자랐기에 융통성이 없는지도 모른다. 단지 산골 마을에서 자란 아이에게 특혜가 있다면 눈을 돌리는 데마다 온 천지가 선물이었다. 돌이켜보건대 꽃과 나무, 풀벌레, 산짐승 등, 직접 보고 체험하고 느꼈다는 것이 바로 축복이었다. 산동네에 봄이 오면 그야말로 꽃밭이었다. 산벚나무, 산복숭아, 살구나무꽃이 환한 꽃등을 달았다. 돌배나무와 싸리꽃도 이어서 피어났다.

산골 아이는 마냥 신났다. 나무에 새순이 돋으면 종다래끼 집어 들고 산비탈로 달려갔다. 화살나무에 순이 돋으면 그 연한 순을 훑어왔다. 홑잎이었다. 어머니가 산나물을 데쳐 간장과 기름으로만 간해서 차려주어도 부드러운 맛을 담뿍 느낄 수 있었다.

어머니는 속리산 등성 쪽으로 산나물을 뜯으러 다녔다. 산나물 채취는 바쁜 농사일을 시작하기 전에 며칠간 이어졌다. 아침 일찍 동네 아주머니들과 조를 짜서 나서면 오후 중참 먹을 시간쯤에야 집으로 돌아왔다. 머리에 한 자루 이고, 어깨에는 다래끼로 가득 뜯어온 나물을 멍석에다 부려 놓았다. 꼭꼭 눌러 담은 자루 속에서 꾸역꾸역 쏟아져 나온 나물의 양은 엄청났다. 나물을 분리하는 데도 한참이나 걸렸다. 다래 순은 데치고 말려서 묵나물로, 고사리는 별도로 분리해서 따로 데쳤다. 참나물이며 삿갓나물이며 취나물도 데쳐서 말렸다. 나물 보퉁이에 두릅이 간혹 보이기는 했어도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아버지는 어디서 나물을 채취하는 걸까. 아버지가 산에 다녀오면 두릅이 제법 모였다. 산 능선의 돌무더기 가장자리에 두릅나무가 있다고 했다. 두릅은 바로 데쳐서 그날 저녁 밥상에 올랐다. 어른들은 두릅이 맛있다고 했으나 내 입에는 홑잎이 훨씬 더 맛있었다. 두릅은 말려서 저장하지 않고 간혹 염장을 했다. 아마 장아찌처럼 만들지 않았을까 싶다. 내가 선호하는 음식이 아니라서 관심은 없었다. 지금도 행사장 뷔페 차림에 두릅이 보이면 먹고, 누가 건네주면 먹는 것으로 족하다. 그런데 남편은 두릅을 즐긴다. 아니, 채식을 즐기는 편이다. 봄에 나오는 두릅 상차림을 할 수밖에 없다

텃밭 아랫녘에 가시를 날카롭게 세운 두릅나무 몇 그루가 자란다. 자칫 채취 시기를 놓치면 가객들에게 손을 탄다. 두 벌까지 먹을 수는 있으나 첫 벌 두릅을 잃으면 엄청 속상하다. 이번에는 서둘러 두릅을 채취했다. 봄에 나는 산채를 금 (金)이라 하고 가을에 나는 것을 은(銀)이라고 할 만큼, 봄에 나오는 두릅은 산나물 중에서도 제왕의 자리를 차지한다. 다른 나물과는 달리 단백질 성분이 있고 비타민과 사포닌 성분까지 함유하고 있다.

두릅 요리는 별로 어렵지 않다. 가장 간편한 방법은 나물을 데쳐서 초장만 곁들이면 된다. 그 자체만으로 타 음식에 밀리지 않는다. 살이 오르지 않은 두릅은 한 꼭지씩 밀가루 옷을 씌워 기름에 지지든, 튀기든 하면 별미가 된다. 그래도 내 입에 맞는 것은 예전에 어머니가 해주었던 방식이다. 두릅을 다른 산나물과 함께 데쳐서 된장과 고추장을 섞어 들기름을 쳐서 조물조물 무쳐주던 그 맛. 그 음식이 그리워서 봄이 되면 산나물을 뜯으러 야산을 헤맨다. 산이 깊은 골짜기에서 자란 아이는 어른이 되어서도 산속을 벗어나지 못한다.

Tip: 두릅에는 독성이 있어서 생으로 먹을 때는 위를 상하게 한다니 주의를 요한다. 두릅의 독성을 없애기 위해 반드시 데쳐서 먹도록 해야 하며 초장을 곁들일 때 떫은맛도 잡아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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