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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70년 되도록 진상 규명조차 안 되는 미군의 독도 폭격 사건

1948년 6월 8일 오전 11시 30분 독도 앞바다에서 조업하던 우리나라 어선들에 미군 폭격기가 폭탄을 투하했다. 이날 폭격으로 어부 16명이 그 자리에서 숨지고 10명이 크게 다쳤으며 어선 20여 척이 파괴됐다. 하지만 이 비극적 사건은 발생 70년이 되도록 진상 규명조차 안 되고 있다. 미국의 공식 사과는 없었고 우리 정부도 침묵으로 일관했다.

독도 폭격 사건으로 조선 민심이 들끓자 며칠 후 미군은 오인 폭격이라는 해명을 내놨다. 일본 오키나와 공군 기지에서 출격한 B29 폭격기가 독도에서 폭탄 투하 훈련을 벌이는 과정에서 빚어진 사고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선을 암초로 오인했다는 미군의 발표는 "어선에 대한 무차별 기관총 사격도 있었다"는 당시 피해자들의 증언과 정면으로 배치돼 신빙성이 떨어진다. 당시 미군이 일본 어민들에게 독도 폭격 훈련을 사전에 알린 것과 달리, 정작 우리 정부나 어민들에게 이를 전혀 통보하지 않은 것도 미심쩍다.

우리 땅에 주둔한 미군조차 독도가 폭격 훈련장으로 지정된 사실을 사전에 알지 못해, 일본 주둔 미군 수뇌부에 항의를 했다는 기록이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가. 오랜 기간 이 사건을 추적한 국내 학자 등이 독도 영유권을 노린 일본의 모략이 사건 배후에 있으며 우리 어민들이 마약상이라는 허위 정보가 미군에 제공됐다는 주장까지 할 정도로 사건에는 석연찮은 구석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당시 미군은 후속 조치를 내놓지 않았다. 사망자 유가족에게는 당시 소 한 마리 값인 30만환 정도가 보상됐을 뿐이었다. 사건 발생 2년 후인 1950년 6월 8일 희생자 위로 행사가 열리고 위령비가 세워졌지만, 미국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피격' 대신 '조난'이라는 단어를 써야 할 정도로 이 사건은 금기시됐다. 역대 어느 정부도 진상 규명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70년 전 억울하게 죽어간 어민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진상 조사가 우선이다. 이제 정부는 진실을 밝혀야 하고 미국에도 자료를 요구해야 한다. 사건 70주년을 맞아 재조명 행사가 진행될 계획이라는데, 필요하다면 특별법이라도 제정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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