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종교칼럼] 꽃피듯 만나자!

독일에서 유학할 때의 일이다. 학교에서 세미나를 마치고 귀가하는 길이었다. 우리 집은 독일 프랑크푸르트 인근 타우누스라는 650m 높이의 큰 산자락에 있어서 도심과 비교하면 공기가 신선하고 계절의 변화를 맛볼 수 있는 곳에 있었다. 나는 그날도 집 앞 역에 도착하여 전철 문이 열리는 순간 저녁이지만 여전히 상큼하고 향긋한 봄 내음을 맡았다. 그런데 바로 앞의 벤치에서 누군가 어깨를 들썩이며 슬프게 울고 있었다. 다가가 보니 몇 번을 길에서 만나 인사를 나누었던 할머니가 아닌가? 물론 '안녕하세요. 좋은 날입니다'가 전부였지만 얼굴만큼은 낯설지 않았다. "할머니 웬일이세요? 무슨 일이 있습니까?" 할머니는 눈물을 글썽이며 대답했다. "아들이 보고 싶어서 그래요." "아드님에게 무슨 일이 생겼습니까?" "아들에게 아무 일도 생기지 않았어요." "그런데 왜 우시죠?" "오늘 아들 집에 가려고 했는데 바쁘다고 오지 말라 해서…." "아, 네! 그래서 우시는군요. 그럼 다음에 가시죠. 얼마 전에 다녀오신 적이 있어요?" "3년 전에요." 나는 멈칫했다. "아드님이 어디 사시는데 3년 전에 다녀오셨어요?" 할머니의 대답에 의하면 아들은 프랑크푸르트 중심가에 살고 있었다. 전철로 30분 거리였다. 30분 거리가 3년 이상 걸리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에 나는 노년의 외로움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독일 사회가 이렇게 부모와 자식 간에 정이 없구나. 한국의 가정은 정이 있어서 좋다'는 민족적 자존심을 확인하는 데 그쳤다. 그런데 요즘 내가 느끼는 바는 한국의 가정도 팍팍하기는 마찬가지다. 가족 관계가 마르고 말라 부서져 먼지가 날 정도인 가정도 꽤 있는 것 같다. 오죽했으면 아파트 이름을 늙은 시어머니가 찾아오지 못하게 국적 불명의 외국어풍으로 길게 짓는다고 한다. 이런 조크를 들으면 웃음이 나와야 하는데 진지하게 들린다.

하루는 아내와 산책을 하는데 벌이 나만 따라오는 것이었다. 평상시에는 아내의 화장품 향기 때문에 벌이 아내에게만 가까이 와서 힘들었는데 그날만은 예외였다. 이유는 내가 밝은 옷을 입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체험을 통해 한 가지를 공부했다. '봄의 꽃들이 이래서 밝고 화려하구나!'

나무가 겨울에 죽은 듯 있다가 봄이 되어 화려한 꽃을 피우며, '나 여기 살아있어, 한번 찾아와 줘'라며 벌과 나비를 초대한다. 벌과 나비는 그 초대를 받아들이고, 겨우내 움츠렸던 날개를 펴며, 반가운 만남을 하고 꿀을 빨며 기쁨의 축제를 벌인다. 그 덕에 꽃은 수분을 하고 열매를 풍성하게 맺어 생명을 이어간다. 이처럼 생명은 반가운 만남을 통해 이어지는 것이다. 만남의 기쁨이 서로를 사랑하게 하고, 사랑은 서로를 풍성하게 하고, 사랑이 서로에게 생명을 준다.

예수님도 모든 교훈의 결론은 '사랑'이라 했다. 사랑 속에 생명이 있다. 서로 사랑하면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몇 주 전 설교 시간에 내가 아내의 이름을 부르며 "~씨 사랑해!"라며 고백을 하였다. TV 방송을 통해 내 설교를 보았던 아내의 6촌 동생이 갑자기 아내에게 전화를 하였다. 까마득한 옛날에 본 어린 시절의 모습만이 서로의 기억에 있는 명목상의 친척 언니 동생 사이였다. 이번에는 정말 반갑게 서로 살아온 시간들을 알려주느라 두 시간을 통화했다고 한다.

아내가 다니는 헤어살롱의 원장님은 최근에 동창회에서 남이섬을 다녀왔다고 한다. 놀라운 것은 그 인원이 60명이라는 것이다. 그만큼 그 모임이 반갑고 즐거운 만남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봄은 만남의 계절이다. 하나님께서 반가운 만남을 위해 축제의 자리를 만드셨다. 온 세상이 이처럼 화려하고 아름다운 때가 있는가? 아름다운 시간, 아름다운 곳에서 만나면 그 만남이 더 아름다워진다.

가족들아, 친구들아, 봄날에 만나자. 꽃 피는 계절에 꽃 같은 모습으로 만나자. 봄날에 꽃 피듯, 활짝 웃으며 만나자!

박병욱 대구중앙교회 대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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