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 북 비핵화, 첫 단추는 끼웠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판문점 군사분계선에 서서 처음으로 손을 맞잡았다. 그리고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을 채택했다. 남북 정상이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했다. 한반도 긴장 상태 완화, 전쟁 위험 해소를 위해 함께 노력하기로 했다. 선언문에 '완전한 비핵화'를 명시한 것은 한반도 대결 구도를 청산하기 위한 첫 단추를 끼운 것이다. 아직 선언에 불과하긴 하나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소중한 출발이 되기를 기대한다.

판문점 선언은 비핵화를 비롯해 군사적 긴장 완화를 통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경제 협력을 비롯한 남북 관계 진전 등 남북 현안을 망라한 의미가 있다. 남북 관계 개선, 전쟁 위험 해소,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이란 원론이 담겨 있다.

하지만 이번 선언은 회담의 핵심 이슈던 북 비핵화를 가장 뒤로 돌리고 북이 평소 주장해온 민족자주 원칙을 가장 먼저 내세웠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적지 않다. 우리는 문 대통령에 대해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CVID)를 원했지만 그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다. 선언문이 비핵화보다 남북 관계의 획기적인 개선과 발전을 먼저 내세운 대목에선 비핵화 없는 경제 제재 해제는 없다는 원칙이 허물어지지는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그럼에도 이번 남북 정상회담은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토대가 될 것이다. 남북 정상이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해 머리를 맞댄 것 자체는 고무적이다. 회담 진행 방식도 과거 두 차례 회담(2000년 김대중-김정일, 2007년 노무현-김정일)에 비해 전향적이었다. 남과 북이 서로의 체제를 인정하며 진정성을 갖고 대화에 임하려는 모양새를 읽을 수 있었다. 선언문 자체는 곧이어 전개될 북미 정상회담을 위해 여지를 남긴 측면도 있어 보인다.

우리는 과거 남북 간 공동합의가 서류에 그친 경우를 수도 없이 보아왔다. 이번 회담을 두고도 똑같은 일이 되풀이되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해 온 것도 사실이다. 김정은이 회담 후 "큰 합의를 해놓고 10년 이상 실현하지 못했다"고 말한 것이나 "오늘 만남도 그 결과가 제대로 되겠느냐는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고 한 것이 '그동안 합의를 지키지 못했다'는 자기 고백처럼 들리는 이유다. 다시는 이런 불신의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아야 한다. 북 비핵화의 첫 단추를 끼운 만큼 북의 진정성을 확인하는 작업이 따라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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