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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칼럼] 신뢰하라, 그러나 검증하라

정창룡 논설실장
정창룡 논설실장

1980년대 중반 미국과 소련의 핵 경쟁은 극에 달했다. 두 나라는 아프간 사태를 두고 반목했다. 미국은 최신형 중거리 퍼싱-2 핵미사일을 유럽에 배치하며 소련을 압박했다. 핵과학자협회가 만든 지구 종말의 날 시계(Doomsday Clock)는 지구 멸망 3분 전을 뜻하는 밤 11시 57분까지 다가섰다. 당시 미 대통령은 로널드 레이건이었다. 레이건은 소련을 '범죄와 거짓과 속임수를 일삼는 집단'이라 몰아붙였다. 그에게 소련은 '악의 제국'에 다름 아니었다.

극한 대결은 극한 타협을 부른다. 두 나라는 핵전쟁의 위기 앞에 극적으로 타협했다. 1987년 12월 8일 핵무기 개발 이후 처음으로 두 정상은 사거리 300~3천400마일의 중거리 핵미사일 2천611기를 폐기하기로 합의했다. 서명식은 미 백악관에서 열렸다. 레이건의 파트너는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었다.

고르바초프를 만날 때마다 레이건은 '신뢰하라 그러나 검증하라'(Trust but Verify)는 소련 속담을 앞세웠다. 소련 작가 수잔 매시가 "소련인들은 속담을 인용하며 대화하면 좋다"고 귀띔한 결과였다. 소련에 대한 불신이 깊던 레이건은 이 속담을 금과옥조처럼 여겼다.

서명식에서도 레이건은 어김없이 이 속담을 끄집어냈다. 서류만 남기고 속일 생각은 말라고 다시 한 번 확인한 것이다. 이를 지켜보던 고르바초프가 웃으며 끼어들었다. "또 그 소리입니까."

궁즉통인가. 믿기는 하되 검증은 한다는 소련 격언은 레이건의 집념 아래 잘 지켜졌다. 어느 때보다 확실한 핵폐기 검증 시스템이 마련됐다. 쌍방의 기술자가 상대방의 민감한 기관에 머물며 철저히 핵폐기 진행사항을 감시했다. 언제라도 의심스러운 곳을 방문할 수 있도록 했다. 비밀주의에 머물던 소련으로서는 힘든 선택이었다. 그로부터 3년여가 흐른 1991년 6월까지 2천692기의 미사일이 폐기됐다. 당초 약속보다 더 많은 미사일이 사라졌다. 같은 해 미국과 소련은 이에서 나아가 첫 전략핵무기 감축 협상에도 서명했다. 그해 지구 종말 시계는 밤 11시 43분까지 늦춰졌다. 아직까지 시계가 그때만큼 늦춰진 적은 없다. 2018년 현재 이 시계는 오히려 인류 파멸의 시간인 자정에 가장 가까운 밤 11시 58분까지 당겨져 있다. 북핵을 둘러싼 국제 긴장 고조가 기후변화와 맞물린 탓이다.

이럴 때 남북 정상이 만났다. 두 정상이 만나 악수하고 포옹하고, 덕담을 나누는 것은 감성적으로는 국민들 마음을 휘젓기에 충분하다. 북한과 미국 정상이 각자 가진 핵 버튼의 유용성을 두고 '자랑질'하던 때에 비춰보면 그 자체만으로도 괄목할 만한 일이다. 여기에 두 정상이 '새로운 평화의 시대를 열어가자' '종전을 하자'고 했으니 낙관론이 싹트고 안도감이 드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남북 정상회담이 남북관계 진전의 낙관론 토대를 깔아주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앞으로 이뤄져야 할 수많은 문제들이 이 낙관론에 묻혀서는 안 될 일이다. 마냥 감동하고 있을 수만도 없다. 검증이란 절차가 남아 있어서다. 남북이 정상회담을 한 것은 이번이 세 번째고, 비핵화 합의도 마찬가지다. 남북은 주요 고비마다 만나 주요 합의를 했지만 3년을 넘긴 경우는 드물다. 이번 선언 역시 전철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경계하고 또 경계해야 할 이유가 거기에 있다.

핵 폐기가 검증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김정은은 여전히 우리 국민을 핵 공포로 몰아넣고 있는 독재자일 뿐이다. 게다가 이번 판문점 방문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완전한 비핵화'에 합의했다"고 했지만 김정은은 이에 대해 한마디 언급도 않았다. 적어도 비핵화에 대한 육성 메시지 정도는 나왔어야 했는데 그러지 않았다.

이런 때 레이건이 '또 그 소리냐'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강조했다는 '신뢰하라 그러나 검증하라'는 말이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제대로 된 검증이 가능해야 북핵 사태로 인해 당겨진 지구 종말 시계를 조금이라도 되돌릴 수 있을까 싶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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