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독도가 핫 이슈다. 평창동계올림픽에 이어 이번 남북 정상회담에서도 독도가 든 한반도기 디저트가 화제로 떠올랐다. 독도를 업으로 하는 사람으로서 이참에 그 실마리를 하나쯤 풀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독도와 관련하여 남북한이 공조해야 할 갈급한 사안은 '동해' 문제다. 주지하다시피, 전 세계의 대부분 지도가 우리의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하고 있다. 그 통한의 역사를 잠시 되짚어보자.
1850년대 이전까지 조선과 일본에서 만든 대부분 지도들은 동해를 '조선해'로 표기하고 있었다. 일본은 태평양을 두고 '대일본해'라고 칭했다. 그러던 것이 1854년 미국 페리 제독이 이끄는 함대가 일본 에도만에 나타나면서 혼란에 빠지게 된다. 그들이 부르던 대일본해를 미국인들은 태평양으로 부른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일본해가 설 자리를 잃자, 1870년대부터 우리의 동해 끝쪽, 일본열도 서쪽 바다에 바짝 붙여 일본해로 명기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것이 제국주의가 발호하던 무렵인 1890년대에 들어서면서 전격적으로 동해를 뭉개고 그 자리에 일본해를 끌어다 붙여 버렸다. 그 후 1929년 발간된 '해양과 바다의 경계(S-23)' 국제수로기구(IHO) 해도집에 등재함으로써 '동해 탈취'를 완성하기에 이르렀다.
우리나라는 1974년 국제수로기구의 '바다 명칭 병기 가능' 결의에 따라 일제강점기에 잃어버린 '동해'를 찾기 위해 눈물겨운 노력을 해왔다. 특히 1977년 S-23 개정판 간행 결의 이후 우리는 전 세계를 향하여 지속적으로 동해 병기를 호소해왔다. 그러나 일본의 끈질긴 방해 공작으로 2017년 총회에서까지도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동해 병기와 관련하여, 북한은 1989년 국제수로기구에 회원국으로 가입하면서, 발언권을 갖게 되었다. 동해의 '일본해' 명기와 관련한 북한의 입장은 단호했다. 2012년 국제수로기구 총회에서 '일본해 단독 표기는 지명 범죄행위'로 규정했다. 이렇듯 북한이 2012년 총회에서부터 우리의 '동해 병기'에 동조하는 모양새를 취했으나, 가입 초기부터 동해를 '조선 동해'로 할 것을 주장한 바 있다.
당시 총회에 참석했던 남한 대표에게 남북한 간 '동해 병기' 현지 공조에 관해 질문한 적이 있다. 그는 한마디로 북한 대표단과 현지에서 동해 문제를 조율하거나 사적인 대화를 할 기회가 없었다고 했다. 5명의 대표단은 책임자인 군 관계자의 인솔하에 단체행동을 하며, 숙소도 북한 공관을 이용하고, 총회 시작 전 승합차로 함께 도착하여 마치면 곧바로 떠난다는 것이었다. 티타임에도 일절 개인행동은 하지 않아 서로 대화 나눌 기회를 가질 수 없었다는 것이다.
2018년의 봄, TV에서 남북 정상이 손을 맞잡는 장면이 끊임없이 흘러나온다. 이를 보면서, 우선 '동해 병기'를 위해 남북한 공조를 실현해야 한다는 조급증이 든다. 2020년 국제수로기구 총회에서 남북이 한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먼저, 총회 참가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동해 병기' 남북한 공조를 약속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북한 대표단을 동해의 중심인 울릉도로 초빙하여 '남북한 동해 병기 학술회의'를 개최하는 것이 급선무다. 이로써 2020년 모나코 총회에서는 남북한이 입을 모아 '동해'를 외침으로써 전 세계 해도집에 동해가 병기되어지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전충진 경북도 독도홍보사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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