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최경철이 만난 사람] 권기홍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

"4차 산업혁명으로 축소되는 노동시장 나눠야 상생"

권기홍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 사진 이무성 객원기자
권기홍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 사진 이무성 객원기자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이 왜 존재하나? 살인을 하니까 그런 것이다. 동반성장이 안 되니까 동반성장에 주목을 해야 하는 거다."

"왜 동반성장이 중요한가?"라는 첫 질문을 던졌더니 아주 쉬운 대답이 날아왔다. 지난 2월 취임한 권기홍(69)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은 오랜만에 만났는데도 변한 게 별로 없었다. 세월이 흘렀지만 카랑카랑한 목소리는 그대로였고, 결론부터 내려주고 부연 설명을 하는 화끈한 모습도 여전했다.

독일 프라이부르크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영남대 경제학과 교수를 거쳐 참여정부 초대 노동부 장관을 지내고 단국대 총장까지 역임한 권 위원장. 그는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과 함께 문재인 대통령의 대표적인 TK 인맥으로 분류된다. 대통령과 가까운 실세 위원장이라는 소문이 나면서 언론의 인터뷰 요청도 쇄도하고 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그를 지난달 25일 오후 서울 구로구에 있는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실에서 만났다. 경제학과 경영학, 정치학'사회학까지 아우르는 통섭의 강의가 인터뷰 내내 이어졌다.

-우리 경제가 동반성장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두 가지 측면에서 봐야 한다. 우선 사회적 파급력 측면에서 동반성장의 중요성을 봐야 한다. 지금 청년실업과 저출산, 사회양극화 등이 얼마나 심각한가? 중산층까지 몰락하고 있다. 무엇 때문인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 탓이다. 이제 국가가 나서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협의와 중재노력을 해야 한다. 사회적 파급력 외에 순수하게 경제적 측면만 봐도 동반성장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다. 4차 산업혁명이 진행되고 있는데 이로부터 파생되는 노동시장의 영향이 어떻게 될 것인지를 잘 봐야 한다. 4차 산업혁명이 계속되면 미래엔 지금 있는 일자리의 20%밖에 남지 않을 것이다. 노동시장이 이렇게 바뀌는데 정부는 가만히 보고만 있어서는 안 된다. 노동시장이 축소되니 일자리를 나눠야 한다. 우리 산업구조는 기업관의 관계가 수직적으로 엮여 있다. 이 기업 네트워크 간 질서가 새롭게 형성되어야 4차 산업혁명에 적응할 수 있다. 이런 시대적 변화를 볼 때 앞으로 상생과 동반성장의 중요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

-산업구조의 변화가 동반성장에 대한 고민을 더욱 앞당긴다는 것인가?

▶경쟁의 형태가 바뀌고 있다. 이제는 기업 생태계 간의 경쟁이다. 그냥 혼자 뛰는 것이 아니라 학교 운동회의 2인 3각 경기처럼 힘을 합쳐 뛰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 경쟁의 방식이 바뀐다. 결국 4차 산업혁명은 융복합 시대의 개막이다. 지금 전기자동차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고 있고 대구도 전기자동차 산업을 잡으려고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데 전기자동차는 기존 차와 완전히 다르다. 그런데 이런 변화 속에서 완성차 업체와 부품사라는 수직적 계열화 구조만 갖고 효율을 낼 수 있을까? 수직적 구조만 갖고는 안 된다. 수평적 상생의 산업 생태계로 가야 한다. 나는 이런 변화에 맞춰 반드시 동반성장에 성공해야 우리가 선진국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본다.

-동반성장, 상생, 말은 쉽지만 누군가 양보를 해야 가능한 것 아닌가? 우선적으로 대기업 노조가 무언가 양보를 해야 할 텐데?

▶낙관은 할 수 없지만 분명히 변화의 조짐이 있다. 내가 아는 한 기업이 있는데 노조가 임금 인상분 일부를 내놓고, 기업도 기금을 출연한다. 이 기금은 이 기업과 거래하는 2, 3차 벤더 업체 직원들의 임금 지원용으로 쓰인다. 벌써 몇 년 전부터 하고 있다. 아직은 규모가 작다. 하지만 나는 이것이 대단히 중요한 변화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바로 '연대임금'이다. 과거엔 생각을 못했던 것이다. 비교적 강성이라고 평가받는 한 기업 노조의 위원장도 이런 선언을 하는 것을 봤다. 연대임금형 하후상박 임금교섭 선언이었다. 연대임금이 나오게 되면 기업이 수용하기 힘든 경우도 생긴다. 기업의 기여분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것은 중요한 포인트다. 최근 한국GM이나 금호타이어 등을 보라. 막바지에 타결을 이뤘다. 회사와 노조에 닥친 위기감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여론 압박은 앞으로 대기업 위주 노동운동의 존립을 어렵게 만들 수 있다. 자동차와 전자산업이 어려워지기 시작했는데 앞으로 몇 년 후가 되면 더 심해질 것이다. 자동차는 전기차가 일반화하면 사용되는 부품 수가 지금의 3분의 1로 줄어든다. 산업 전반에 닥친 이런 위기감이 자구책을 찾는 노력을 만들어낼 것이다. 연대임금형 교섭이 나오는 등 기존 노사관계가 대폭 달라질 것이다.

-대기업이 변하면 중소기업도 당연히 변화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반론도 나오는데?

▶당연하다. 중소기업은 놀고먹으면서 대기업에 변하라고 하면 안 된다. 그런데 중소기업은 역량이 아직도 미흡하다. 일단 도와가며 부추기면서 가야 한다. 독일에서는 중소기업을 미텔슈탄트(Mittelstand)라고 한다. 미텔은 중간, 슈탄트는 계층을 의미한다. 달리 말하면 독일에서는 중소기업이 중산층인 셈이다. 'Mittelstand ist eine haltung'이라는 말이 독일에 있다. 할퉁(haltung)이라는 뜻은 태도, 문화다. 중소기업은 바로 태도'문화라는 의미다. 중소기업의 나라 독일이 잘 알려주듯이 중소기업은 대기업과는 다른 문화를 갖는다. 독일은 이런 정신을 갖고 가장 강한 중소기업을 가지게 됐다. 독일의 중소기업은 가족경영체제를 갖고 기술에 대한 자존심이 아주 강하다. 이것이 독일 중소기업의 문화다. 문화가 달라지지도 않는다. 이런 태도와 문화를 바탕으로 독일 중소기업은 기술 경쟁력의 주체가 됐다. 독일 중소기업은 기술력이 있으니 전속계약에서 해방돼 있다. 자연스럽게 수평적인 산업 생태계 속에 살아간다. 그런데 우리 중소기업은 갑을관계에 여전히 묶여 있다. 우리도 이런 상황에서 탈피해 고유문화를 가질 수 있는 기업으로 중소기업이 스스로 변화해 나가야 한다.

-이른바 최강의 중소기업이라는 의미의 '히든(Hidden) 챔피언'이 많은 독일 모델을 그대로 우리 중소기업에 가져오기가 힘든 것 아닌가?

▶독일 히든 챔피언은 역사적 과정에 따른 것이었다. 프랑스가 중앙집권국가였던 반면, 독일은 분권 국가였다. 독일에서는 성끼리 싸우기 위해 성안의 기술자들이 무기개발에 나섰다. 작은 공국 내에 중소기업이 생기게 됐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역사적 배경이 없다. 지금의 한국 대기업은 국가가 억지로 만들었다. 우리 중소기업이 약한 것은 역사적 업보다. 그렇다 하더라도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 기술경쟁력 확보와 수평적 상생의 생태계를 동시적으로 추구해나가는 작업을 멈추면 안 된다. 또 독일 얘기를 하는데 중소기업의 나라 독일은 아주 작은 일을 두고 깊이 있게 일한다. 그러니까 아주 작은 일에 집중하는 10명만 모여도 서로의 장점이 쌓여 큰 시너지 효과가 나온다. 우리 중소기업들도 이처럼 고유한 성격과 문화를 잘 살려야 한다. 당장의 이익이 안 나오더라도 지키고 싶은 문화를 지킬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가능하면 히든 챔피언이다. 위기일수록 교과서대로 해야 한다. 교과서대로 안 하니까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자영업자들이 어렵다고 아우성이다. 프랜차이즈 갑질 탓에 큰 고통을 겪고 있다는 호소를 하는 자영업자들도 너무 많다. 자영업자들과의 동반 성장에 대해서는 어떤 계획을 갖고 있나?

▶조사해 보니 우리나라 프랜차이즈 브랜드가 5천700여 개인데 직영점은 1만6천여 곳밖에 안 된다. 프랜차이즈 업체 1개당 고작 3곳 정도의 직영점만 갖고 있는 것이다. 나머지는 모두 가맹점이다. 22만8천여 곳의 가맹점이 국내에 있다. 다른 나라는 직영점이 많은데 우리나라만 유독 가맹점이 많다. 직영점이 많아야 프랜차이즈 본사가 각 점포에서 발생하는 애로사항을 알 수 있다. 우선적으로 프랜차이즈 업체가 직영점을 늘려야 한다. 그리고 지금의 프랜차이즈 체제는 얼굴 없는 익명의 지배 방식이다. 우리 사회가 더 건전해지기 위해서는 얼굴이 있는 자본주의로 가야 한다. 얼굴 있는 자본주의를 위한 구체적 제도화 방안은 자격증이다. 우리 사회에 자격 제도가 더 활성화되어야 한다.

-자영업자들을 대상으로 한 자격제도가 자영업 활성화를 위한 도구가 될 수 있다는 말인가?

▶문방구를 운영하시는 분들이 "다이소가 문구를 판다"며 하소연을 한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왜 경쟁을 안 시키고 문방구 보호 정책을 쓰느냐"는 불만도 있다. 독일을 보자. 독일은 자격이 있어야 문방구를 할 수 있다. 자격이 있어야 신발 가게도 연다. 자격증을 따는 데 7년씩 걸리기도 한다. 이상하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자격증을 가진 장인의 가게가 생기니 소비자들이 이곳으로 간다. 자신이 직접 신을 신발은 장인의 가게로 가고, 여러 명에게 무작위 선물로 나눠줄 사은품용 신발은 대형소매점에 가서 산다. 우리가 외줄서기 경쟁을 하는 한 악순환을 해결할 수 없다. 대자본에 기대기만 하다 보니 프랜차이즈만 자꾸 나온다. 소비자 효용 측면에서도 프랜차이즈 가격이 훨씬 더 비싸다. 좋은 동네 가게가 많아지면 탄탄한 중산층이 될 수 있다. 이런 문화를 살려내야 한다. 동네 가게가 사라지고 온통 프랜차이즈만 생기면 도시 매력도 떨어진다. 도시에 다양성이 없고 특징도 사라진다. 우리나라는 전국적으로 무특징한 사회로 가고 있다. 고쳐져야 한다.

-자영업자를 살려 동반성장의 기운을 더욱 확산시킬 또 다른 대안은 없을까?

▶독립된 점포가 힘들어지는 것은 자본력이 약한 탓이다. 그 자구책이 협동조합이 될 수 있다. 서구 사회에 가보면 협동조합이 많다. 독일은 와인산업이 발달해있는데 농부는 포도만 키운다. 협동조합이 나무별로, 포도송이별로 등급을 매긴 뒤 싣고 가서 공동 브랜드를 붙이고 판매한다. 판매되면 수금해서 농가별로 몫을 나눠준다. 모여서 협동조합을 통해 하니까 이런 작업이 가능하다. 협동조합의 특성은 수평적 관계다. 각 농가들이 처할 수 있는 자금력의 열세를 만회하는 동시에 수평적 관계를 통해 다양성도 확보했다.

-문재인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근로시간 단축 정책으로 인해 자영업자들이 아우성을 치고 있다. 동반성장을 오히려 해친다는 지적도 있는데?

▶우리 편이 우리를 죽인다는 얘기가 있긴 하다. 물론 부작용이 있다. 그렇지만 우리 사회의 임금격차를 이대로 놔둬서는 안 된다. 우선은 최저임금을 보장해줘야 한다. 이런 식으로 최저임금 올리면 고용주가 종업원보다 더 불쌍해진다는 말도 들었다. 속도는 조절해야 한다. 또 부작용은 다른 형태로 해결하면 된다. 준비가 다소 덜 됐다는 지적도 있는데 이 부분에 대한 비판은 수용하고 고쳐나가면 된다.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은 모두를 위한 것이기에 반드시 해야 한다. 그리고 이 부분에서 대기업의 역할이 있어야 한다. 최저임금 인상분에 대해 대기업이 납품 단가에 반영해줘야 한다. 최저임금 인상의 어려움 때문에 중소기업이 무너지면 대기업도 결국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에 대한 의구심도 적지 않은데?

▶위에서 물이 떨어지는 낙수효과가 나오지 않으니 밑에서 물을 끌어올려 물을 떨어뜨리는 분수효과를 노리는 것이다. 대기업들이 투자를 안 한다. 유보금만 잔뜩 쥐고 있다. 30대 대기업의 낙수효과를 전혀 기대하지 못하는 현실이다. 소득주도 성장정책이 제대로 된 성장이론은 분명히 아니다. 그런데 도저히 낙수효과가 나오지 않으니 펌프질이라도 하는 것이다. 낙수효과를 도저히 볼 수 없는 현시점에서 정부가 당연히 정책적으로 해야 하는 일이다.

-제대로 된 동반성장을 위해서는 분권과 자치가 더 확산되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큰데?

▶분산부터 해야 한다. 중앙정부가 거의 독점하는 소득세'부가세에 대한 몫을 지방정부가 가져갈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식으로 분산부터 해야 한다. 분산이 안 되고 분권만 강조하면 지방에서도 부익부 빈익빈이 나타날 수 있다. 분권을 추진하되 분산정책이 우선적으로 시행되어야 제대로 된 분권과 자치가 될 수 있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