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주자가 하는 일 중 제일 힘든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연습하고 연주를 무대에 올리는 일이겠지만, 그와 비슷하게 어렵고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 어떤 곡을 연주할지 프로그램을 정하는 일이라고 한다. 너무 어려운 곡을 선택하면 청중이 오지 않고, 늘 하던 곡만 연주하면 청중이나 연주자 모두 따분한 자리가 되니 어느 쪽에 장단을 맞춰야 하는지 갈등이 될 법도 하다. 그런데 청중의 입장에서 보면 흥행이 잘 되고 청중들의 호응이 높은 음악회에서 으레 연주되는 곡들이 있다. 대표적인 곡이 바로 이탈리아 작곡가 안토니오 비발디의 협주곡 '사계'다.
바이올린 협주곡이 원곡인 '사계'는 바이올리니스트였던 비발디가 자신이 연주하기 위해 만든 수백 곡의 협주곡 중 사계절의 이름을 붙인 네 곡의 시리즈다. 요즘처럼 만개한 봄이 그 찬란한 빛을 발하는 시기에는 여지없이 협주곡 '봄' 이 전국 각지의 공연장서 연주된다. 1725년에 발표되었으니 이제 300살이 다 되어오는 이 곡의 긴 생명력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이 협주곡은 서양음악사에서 초창기에 시도된 '묘사음악'의 분류에 들어간다. 이 곡들에는 이탈리아 전통에 따른 짧은 시 '소네트'가 악보마다 붙어 있다. 가령 '봄'의 1악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봄이 왔다. 새들은 아름답게 지저귀고, 시냇물은 부드러운 소리를 내며 흐른다…." 시의 내용은 지극히 평범하나 자연의 소리, 그 속에 생활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비발디의 절묘한 묘사 기법으로 기막히게 표현된다.
두 번째로는 작품이 발표된 시기로는 획기적으로 한 대의 악기, 즉 바이올린 솔로를 위해 만들어진 협주곡이라는 점이다. 이 시기의 협주곡들은 큰 소리를 내지 못했던 당시의 악기 사정에 따라 독주악기가 셋 정도 모여서 연주되곤 했는데 비발디는 주인공인 독주자가 한 명으로 된 협주곡을 최초로 시도한 작곡가 중 하나다. '사계'를 포함한 이 시기 비발디의 협주곡들은 그 효시가 된 중요한 작품들이다.
마지막으로, 이 곡들이 주는 끊임없는 즐거움이다. 누구든 음악에서 즐거움을 느끼려면 우선 내 마음대로 상상할 수 있는 '자유'가 전제돼야 하는데, '다듬어지지 않은 진주'라는 뜻이 들어 있는 바로크 시대의 모토가 바로 음악가와 청중이 함께 누릴 수 있는 자유였다. 어떤 편성이나 틀에 넣어도 훌륭하게 소화되는 신비로운 힘을 지닌 명곡 '사계'의 매력은 바로 이런 상상력이 동반된 창의성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사계'를 들으면서 올봄도 나만의 상상으로 멋지게 만들어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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