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전북 익산소방서 여성 구급대원이 취객에게 수차례 폭행을 당하고 언어폭력을 겪은 뒤 스트레스성 뇌출혈로 숨져 사회적 공분을 샀다. 시민들의 생명을 구하면서도 일상적인 욕설과 폭력에 노출되는 구급대원들의 고충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단적인 사례다. 지난 4, 5일 대구 동부소방서 119구급대와 24시간을 함께하며 그들의 일상을 지켜봤다. 가까이서 접한 구급대원들의 고충은 상상 이상이었다.
◆구급대원 10명 중 7명이 척추 질환 앓아
4일 오전 11시 42분, 평온하던 구급대 사무실에 출동을 알리는 새소리가 울려 퍼졌다. '남편이 침대에서 떨어져 귀에서 피가 나고 온몸을 부들부들 떤다'는 신고가 접수된 것. 10분 만에 도착한 현장에는 한 노인이 침대에 누워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장철우(31) 소방사와 박상욱(39) 소방장은 신고자인 아내를 안심시키며 침착하게 환자를 들것으로 옮겼다. 1급 응급구조사인 장 소방사는 구급차 안에서 맥박을 재고 혈액을 채취하는 등 응급실 도착 전까지 환자 상태를 최대한 파악하려 애썼다.
장 소방사는 "환자를 병원에 인계할 때 신속한 조치를 받게 하려면 기본적인 건강 상태를 알고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출동 나갔던 두 소방관이 복귀한 시각은 낮 12시 40분. 점심 메뉴였던 국수 면발은 퉁퉁 불었다. 장 소방사는 "끼니를 제때 못 챙기는 것은 모든 소방관의 숙명"이라며 웃어넘겼다.
구급대원의 허리 통증은 피할 수 없는 직업병이다. 이날 오후 10시 40분, 신암동 한 빌라 2층에서 '욕실에서 쓰러진 환자를 구해달라'는 신고가 접수됐다. 김중봉(40), 김수기(35) 소방교가 끊임없이 통증을 호소하는 환자를 조심스럽게 구급차로 옮겼다. 김수기 소방교는 "고층 건물에서 환자를 싣고 계단을 오르내리면 허리에 부담이 많이 간다"며 "허리 통증은 구급대원의 직업병이자 고질병"이라고 했다.
동부소방서 구급대원들의 지난해 건강검진 결과를 보면 검진 대상 57명 중 74%인 42명이 추간판 탈출증 등 척추질환 진단을 받았다. 이 밖에 간이나 신장 등 한 가지 이상 건강 문제가 발견된 구급대원이 93%(53명)나 됐다.
◆욕설과 폭행, 사고 현장 충격까지… 국가가 관리 나서야
불규칙한 식사나 허리 통증보다 구급대원을 괴롭히는 건 주취자들의 폭력과 허위신고다. 동촌구급대 김정목(30) 소방사는 지난달 14일 취객을 도우려고 출동했다가 봉변을 당했다. 만취한 가해자가 김 소방사에게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을 퍼붓고 주먹을 휘둘렀다. 당시 상황이 담긴 동영상에는 "똑바로 살아라 이 XX야, XXX 같은 놈"이라고 욕하고 주먹을 휘두르는 장면이 있다. 김 소방사는 "동영상을 보여줘도 가해자는 '그런 적 없다'며 잡아떼 사과도 못 받았다"고 털어놨다.
대구소방본부에 따르면 지난 2013년부터 올 4월 말까지 형사 처벌로 이어진 구급대원 폭행 사건은 모두 48건에 이른다. 매년 10여 건의 심각한 폭행 사건이 이어지는 셈이다. 그러나 이 중 절반인 24건은 가벼운 벌금형에 그쳤다.
경북소방본부의 경우, 2013년부터 지금까지 구급대원이 폭행당해 형사 처벌된 건수는 61건에 이른다. 절반가량인 25건이 벌금형에 그쳤고, 징역(집행유예) 23건, 재판 중 3건, 기타(합의 등) 10건 등이다.
지난해엔 음주 상태로 구급대원의 응급처치를 받다가 대원의 얼굴 등을 때리고, 이송 중에도 난동을 벌인 고령에 사는 70대 남성이 결국 재판에 넘겨져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의 처분을 받았다.
사고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하는 구급대원은 참혹한 광경을 자주 접할 수밖에 없다. 김성호(24) 소방사는 지난 3월 교통사고 현장을 수습하고자 출동했다가 큰 충격을 받았다.
김 소방사는 "시신의 얼굴이 대부분 사라진 상태였다. 퇴근 후에도 자꾸 떠올라 잠이 오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구급대원들은 심한 스트레스를 풀어낼 뾰족한 수가 없다. 정진환(52) 구급대장은 "대원들의 업무 강도가 세다 보니 휴무일에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무언가를 한다는 것 자체가 부담"이라고 했다.
이와 관련, 이기환 경일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소방서에 상주하는 심리 상담사를 두거나, 적어도 상담사가 정기적으로 대원들과 만나게 할 필요가 있다"며 "이제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정책적 대안을 제시할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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