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 칼럼] 숨 쉴 권리를 촉구한다

황량한 옥수수 농장. 갑자기 먼지 폭풍이 밀려온다. 어른들은 아이들을 안고 허겁지겁 집 안으로 내달린다. 아이들은 심하게 기침을 하며 고통스러워한다. 2014년 개봉 영화 '인터스텔라'는 환경오염이 절정에 달하면서 인류는 점차 죽어가고 옥수수마저 재배할 수 없는 '디스토피아'를 그리고 있다.

최근 들어 이 영화 장면이 자꾸 떠오른다. 영화의 감동을 뒤로하고 그 배경이 낯설지 않기 때문이다. 혹여 우리나라의 미래가 되지 않을까. 막연한 두려움마저 엄습한다. 우리나라의 미세먼지 문제는 갈수록 악화되는 형국이다. "정말 이민 가고 싶다"는 온라인 댓글은 절망이 섞인 우리의 심정을 대변하는지도 모른다.

어느새 우리는 미세먼지와의 '불편한 동거'를 하고 있다. 미세먼지는 비가 오지 않는 날이면 어김없이 찾아온다. 연일 미세먼지나 날씨가 인터넷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는 것만 봐도 그렇다. 사람들은 매일 미세먼지 수치를 확인해야 한다. 미세먼지가 '나쁨' 단계에 들어가면 미세먼지 전용 마스크를 착용하고 외부 활동을 자제하라는 앵무새 같은 방송 멘트를 들어야 한다.

그렇다면 마스크만 착용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가. 초미세먼지가 피부나 모공, 심지어 눈이나 귀로 침투하는 것은 어떡할 건가. 또한 바깥 공기로 인해 악화된 실내 공기는 어떡할 건가. 아무리 고민해도 미세먼지는 개인이 조심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미세먼지가 더욱 심각하게 다가오는 것은 그 원인에 있다. 국내 요인이 크다면 강력한 규제와 전방위적인 노력으로 얼마든지 줄일 수 있다. 하지만 미세먼지가 국외, 즉 중국 요인이 크다는 데 심각성이 있다. 중국발 미세먼지가 편서풍을 타고 한국을 오염시키고 있다. 여기다 대기 정체 현상이 미세먼지 심화를 부추기고 있다. 일부 전문가는 우리나라에 미세먼지 농도가 짙을 때는 중국 요인이 전체의 60~70%에 이른다고 추정한다. 이 때문에 정부의 의지와 외교력 등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하지만 정부의 태도는 거의 방관에 가까운 모습으로 비친다. 간간이 미세먼지 공동 대응을 위해 협의한다는 것과 6월쯤 '한중 환경협력센터'를 개소한다는 보도가 나올 뿐이다. 어디에도 구체적인 계획이나 방안은 없다. 여론에 민감한 정부가 유독 이 문제에 대해서는 저자세로 느껴지는 대목이다. 혹시 중국 눈치 보기에 급급한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혹자는 중국 요인이 크다는 실증적 자료를 최대한 확보해 중국을 설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가. 만약 그렇게 했는데도 중국이 오리발을 내민다면 대안이 있는가. 국가 간 환경 문제에서 가해국이 원인을 일단 부정하고 보는 것은 세계 여러 사례에서도 엿볼 수 있다.

이 문제는 시간을 갖고 인내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지금도 죽음의 먼지는 국민 건강을 갉아먹고 있다.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정부는 범정부 차원의 대책본부를 꾸려 외교와 연구를 함께 진행하는 '투트랙'으로 가야 한다. 중국과의 대화가 용의하지 않다면 다른 나라들이나 국제기구와의 연대를 통해 최대한 중국을 압박해야 할 것이다. 환경 NGO들을 활용해 세계를 대상으로 끊임없이 이 문제를 제기해야 할 것이다. 동시에 실증적 연구와 자료 수집도 체계적으로 진행해야 한다.

남북'북미 정상회담으로 인한 '한반도 평화'도 좋다. 그러나 어느 것도 국민의 건강과 생명보다 우선할 수는 없다. 편하게 숨 쉬는 것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이기도 하다. 우리는 국민으로서, 인간으로서 당연한 권리를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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