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대구 경찰은 잇따른 인권 침해 논란으로 홍역을 치렀다. 지난 2월 데이트폭력을 신고하고자 수성경찰서를 찾은 피해자를 제대로 보듬지 못한 게 시작이었다. 수사관 앞에서 힘들게 입을 뗀 피해자는 어수선한 사무실 분위기에 당혹감을 느꼈다. '더 좋은 남자 만나면 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는 모욕감까지 들었다. 견디다 못해 경찰서를 뛰쳐나온 이 여성의 사연은 인권단체를 통해 알려졌고, 경찰은 사회적 지탄을 받았다. 이 일로 수성경찰서는 여성단체들이 선정하는 '성평등 걸림돌상'을 받아들었다. 이후 대구시내 각 경찰서 여성청소년계에는 그동안 없던 장소가 생겼다. 성폭력 피해자들이 독립된 공간에서 차분하게 피해 사실을 털어놓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후 공공기관의 인권침해 피해 호소가 줄을 이었다. 인권단체와 여성단체들이 경찰서를 찾아온 사례가 올 들어 벌써 네 차례다. 같은 달 23일에는 아내가 카페에서 지인에게 성추행을 당했는데, 지적장애인이란 이유로 경찰이 사건 접수를 해주지 않았다는 진정이 접수돼 논란이 됐다. 그러나 이 남성은 지인들과 도박을 하다가 돈을 잃자 성추행을 당했다며 허위 신고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뇌병변장애 1급 장애가 있는 두 살배기 딸을 쓰레기가 가득한 집안에 방치하는 등 아동학대 혐의까지 있었다.
아이 돌보미로 일하는 여성이 돈을 훔친 용의자로 몰렸다는 인권침해 논란 보도를 한 본지 기자는 피해자(?)로부터 항의 메일을 받았다. 신고자와 오해가 있었고, 수사관이 윽박지르거나 통장 거래 내역을 내라고 강요하지도 않았다는 내용이었다. 이 여성은 자신을 대변해준 인권운동단체와 권한 위임도 끝냈고, 나서지 않기로 약속받았다는 내용도 덧붙였다. 인권운동단체의 성명서를 토대로 보도한 기자만 졸지에 '오보'를 낸 셈이 됐다.
문재인 정부 들어 가장 민감해진 것 중의 하나가 '인권 감수성'이다. 올해처럼 인권·여성단체들의 경찰서 방문이 줄을 이었던 적은 없다. 인권침해를 당한 피해자들의 항의가 조용히 묻혔던 과거와도 다른 양상이다.
경찰관들도 달라진 인권 눈높이를 실감하고 있다. "범죄 피의자들조차도 인권을 강조하다 보니 정상적인 업무가 어려울 때도 간혹 있어요. 그래도 국민 눈높이에 맞춰서 경찰 조직이 더욱 바뀌어야 할 부분이겠죠." 한 간부 수사관은 "앞으로 수사를 어떻게 하냐"며 난감해했다. "증거 우선주의로 수사를 진행해야죠. 솔직히 진짜 범죄자들은 인권침해 운운 안 해요."
경찰 내부의 조직적인 움직임도 있다. 경찰청은 인권침해 사건의 진상을 규명할 진상조사위원회를 출범시켰고. 수사 과정에서 사건 관계인들의 인권도 최대한 보장하겠다고 공언했다. 피의자의 방어권을 보장하는 '자기변호노트'도 서울의 6개 경찰서에서 시범운영 중이다.
한 사회의 인권 수준이 높아지기까진 진통을 겪을 수밖에 없다. 인권 보장은 타인의 고통에 대한 인식과 공감의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인권 감수성의 확대는 결국은 옳은 방향이다.
이준섭 대구경찰청장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대응과 절차적 정당성이 굉장히 중요한 시대가 됐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중간관리자들을 중심으로 업무 전문성을 키우고 시민사회가 요구하는 인권 눈높이에도 맞추겠다고도 했다. 대응 매뉴얼과 교육 내용도 바꾸고, 직원 교육 강사에도 시민사회단체를 초청하겠다는 약속도 했다. "내년에는 꼭 성평등 디딤돌상을 받겠다"는 경찰의 다짐이 이뤄질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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