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달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북미 정상회담은 3년 전 같은 곳에서 열린 중국과 대만 간 분단 66년 만의 첫 정상회담을 교범으로 삼을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과 대만이 당시 당일치기로 제3국인 싱가포르에서 분단 66년 만에 역사적 정상회담을 열었다는 점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참고로 할 부분이 적지 않다.
라즈 샤 미국 백악관 부대변인은 싱가포르를 북미 대화 개최지로 선정한 데 대해 "수년 전 중국과 대만 지도자의 첫 회담도 바로 싱가포르에서 열렸다"면서 싱가포르의 중립적 위상, 정상 경호의 유리함 등을 설명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마잉주(馬英九) 당시 대만 총통은 2015년 11월 7일 싱가포르 샹그릴라 호텔에서 1949년 양안 분단 이후 66년 만에 첫 정상회담을 개최했다. 반나절 동안 이뤄진 양안 정상의 회동에선 합의 내용보다도 첫 만남에서 80여 초간이나 손을 마주 잡는 모습을 연출한 만남 자체에 더 큰 의미가 부여됐다.
당시 회담장에는 양안의 체제나 이념 차이를 상기시키지 않기 위해 국기를 걸지 않았고 중국 공산당의 붉은색, 대만 국민당의 푸른색도 아닌, 밝은 황색 벽을 배경으로 중립적 의미와 양안의 대등성을 강조했다.
시 주석이 회담에서 "우리는 뼈와 살이 터져도 끊을 수 없는 형제이자 피로 이어진 가족(친척)"이라고 강조하자 마 전 총통도 "양안 인민은 중화민족이며 염황의 자손"이라고 화답했다.
두 정상은 서로 '선생'으로 부르며 만찬용 술로 각각 마오타이(茅台)주, 진먼(金門) 고량주를 준비해왔고 회담장 임차료나 만찬 식사비도 절반씩 부담하는 등 세심한 배려가 이뤄졌다.
만찬장 테이블 위에 놓인 참석자 이름표와 식단도 중국 측에는 간체자, 대만 측에는 번체자를 썼다. 이런 역사적 의미와 세심한 배려에도 양안 회담은 그 성과를 계속 이어나가지 못했다.
중국도 당시 대만 총통 선거를 2개월여 앞두고 정권교체의 위기에 몰린 국민당 정부에 힘을 실어주고 민진당의 독립 노선을 견제하기 위해 양안 회담을 개최했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였다.
당시 두 정상은 92공식(九二共識'1992년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되 각자 명칭을 사용하기로 한 합의)의 견지를 확인하며 양안 회담 정례화, 핫라인 설치, 대만의 외교적 고립 탈피 등을 논의했으나 모두 무위로 돌아갔다.
대만 독립 성향의 차이잉원(蔡英文) 민진당 정부가 들어선 이후 중국과 대만의 공식 교류는 중단된 채 현재 대만에 대한 중국의 외교, 군사적 압박이 강화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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