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를 탐하다/ 이종호 지음/ 북카라반 펴냄
중국 사서 '위지동이전'에 '고구려는 초목이 중국과 비슷하여 장양(藏釀)에 능하다'는 기록이 보인다. '장양'은 전통적인 발효식품이나 젓갈을 의미하지만 주류(酒類)학자들은 '술 담금' 즉 양조(釀造)의 뜻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이처럼 술은 고대부터 우리 민족에게 널리 애용된 음료이자 식품이었다.
우리나라 전통술을 말할 때 막걸리를 빼놓을 수 없다. 막걸리는 1837년경에 저술된 '양주방'(釀酒方)이라는 문헌에 혼돈주(混沌酒)라는 이름으로 처음 등장한다. 쌀과 누룩으로 빚은 희고 탁한 액체는 오랜 세월을 거치며 민족의 술로 자리매김했다. 조상들은 마시고 즐기는 오락의 용도뿐 아니라 제례에 올리는 제물로도 막걸리를 인식했다.
시큼하면서 담백한 한국 막걸리를 다룬 책이 출간돼 눈길을 끈다. 이종호 한국과학저술인협회 회장이 펴낸 '막걸리를 탐하다'에는 한국인이 사랑하는 막걸리에 대한 모든 것이 담겨 있다.
◆건강에도 좋아 '웰빙 음료' 반열에
막걸리의 장점은 많이 알려졌지만 흔히 '5대 미덕'을 지녔다고 알려진다. 허기를 다스려주고, 취기를 심하게 하지 않으며, 추위를 덜어주고, 기분을 북돋우며,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해준다는 것이다.
선조들은 오랫동안 막걸리를 마신 경험을 통해 이런 '미덕'을 찾아냈다. 여러 장점이 과학적 검증을 거치며 막걸리는 이른바 '웰빙 음료'의 반열에 올랐다.
과학적으로 밝혀진 막걸리의 효능은 많다. 열량이 낮아 다이어트에 크게 도움이 된다. 막걸리의 평균 알코올 함유량은 6~8도로 웬만큼 마셔도 크게 취하지 않는다. 섬유질, 당류, 유기산 등에서 얻어지는 열량도 낮다. 풍부한 아미노산, 단백질도 막걸리의 장점. 발효 곡물에 들어 있는 단백질의 함량은 우유보다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술 발효 과정에서 효모 균체가 증식해 유산균 함유량이 많다. 이외 유기산, 비타민B가 풍부해 성인병 예방, 항혈전, 항고혈압, 항산화, 피부 미용에도 뛰어난 효과를 보인다.
◆전국 유명 막걸리 양조장 탐방
이 책에는 전국의 유명 양조장 24곳도 소개하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 막걸리 등을 생산하는 양조장은 850곳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서 생산되는 막걸리도 1천500여 종에 달한다.
저자는 학술서 탐독, 전문가 설문, 고증 등 구체적인 접근을 통해 '막걸리의 현주소'를 잘 보여주고 있다. 또 현지답사를 통해 역사와 전통을 간직한 전국의 양조장들을 소개했다.
저자는 5장에서 한국 막걸리 역사가 그리 순탄치 않았다고 말한다. 즉 일제강점기를 거치는 동안 전통 막걸리 맥이 거의 사라졌고 대신 일본의 누룩이 막걸리 업계를 석권했다는 것. 현존하는 양조장 중 전통누룩을 사용하는 곳은 몇 집 되지 않기 때문에 막걸리 명소를 찾는 일 자체가 쉽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막걸리 붐 타고 '국민주'로 부상
막걸리는 시대와 지역에 따라 제조 방식이 달랐다. 목적에 따라 여러 가지 용도로 사용됐으며 가내(家內) 기술 또한 대대로 전승됐다.
일제강점기는 막걸리 제조와 관련해 큰 변화를 맞게 된 시기다. 저자에 따르면 1910년 양조장 수는 15만6천 곳에, 술 제조 면허를 받은 사람도 36만6천700명에 이르렀다. 그러다 조선총독부의 양조장 억제 정책으로 술 제조 면허자 수가 13만1천700명에서 1930년경 4천 명으로 감소했다. 1932년에는 단 1명으로 줄었고, 1934년에는 제조 면허제 자체를 아예 폐지했다. 민간에서 직접 빚은 가양주(家釀酒)들이 대부분 징세에서 제외돼 세수가 줄어들자 일제는 1907년 '주세법'을 제정했던 것이다.
해방 후 막걸리는 다시 국민의 품으로 돌아왔고, 1960년대 이르러 '국민주' 대접을 받으며 술 소비량의 70% 이상을 차지하게 된다.
하지만 곧 복병을 맞게 된다. 정부가 식량난을 이유로 원료를 쌀에서 밀가루로 변경했기 때문이다. 1977년 통일벼 증산이 시작되면서 쌀과 밀가루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었다.
현재 한국의 막걸리 붐은 지난 2005년부터 일본에서 불기 시작한 건강 열기와 무관치 않다. 열풍 이후 사람들이 전통 막걸리를 다시 인식하기 시작했으며 과학계에서도 영양과 효능에 관한 연구를 계속 내놓고 있다.
이 책은 국민주로서의 막걸리를 선입견이나 편견 없이 살펴보자는 취지에서 접근하고 있다. 한국의 막걸리에 대한 백과사전이자 '막걸리 예찬서'라고 해도 무방하다. 책장을 덮을 때쯤 막걸리의 시큼한 향기가 친근하게 다가오고, 술집으로 발걸음을 옮기게 될지도 모른다. 356쪽, 1만6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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