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미국 동부시간) 백악관에서 있었던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의 회동에서는 북한이 추구할 '비핵화 모델'이 핵심 화두였다.
과거 자발적으로 핵을 포기한 사례의 장단점을 토대로 북한 상황에 맞춘 '특화된 방식'을 적용할 필요가 있다는 컨센서스 속에서 한미 양국이 의견 조율에 나섰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지난 9일 재방북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새로운 대안'을 제시한 것과 맞물려 어떤 유형의 비핵화 모델이 나올지에 국제사회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강 장관은 이날 볼턴 보좌관을 만난 자리에서 "리비아뿐 아니라 카자흐스탄 방식 등 여러 방식도 있는 만큼, 북한의 경우 어떤 것이 제일 현실적인지 학술적 차원에서 이야기를 나눴다"고 정부 고위관계자는 전했다.
리비아 모델은 볼턴 보좌관이 신봉하는 비핵화 모델로 2003∼2005년 리비아 카다피 정권의 핵 포기 사례를 일컫는다. 이 모델의 핵심은 북한이 먼저 신속하게 핵폐기 절차를 마무리한 이후 미국을 비롯한 관련국들이 보상과 반대급부를 제공하는 것으로, '일괄타결식 해법'의 대표적 유형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영국의 중재로 핵 포기 선언을 한 리비아가 선언 직후 즉각 핵시설 공개와 포기 절차에 들어간 데 대해 미국은 리비아의 정권교체를 추구하지 않는다고 약속하고 관계 정상화와 경제지원으로 보답했다.
문제는 북한이 이 같은 일괄타결 방식을 받아들이지 않아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질 가능성이 있는 점이다. 이에 따라 미국은 일부 단계별 보상조치를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주목할 대목은 이번 회동에서 카자흐스탄 모델이 언급된 것이다. 카자흐스탄은 우크라이나, 벨라루스와 함께 1991년 소비에트 연방이 붕괴하자 어느 날 갑자기 자국 영토에 실전 배치된 핵무기를 갖게 된 사례다. 미국,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등의 압박을 받은 이들은 경제 지원과 체제 보장을 받는 대가로 핵무기 1천 여기를 러시아에 넘겼다.
이 과정에서 특히 미국은 샘 넌'리처드 루가 전 상원의원이 공동으로 고안한 '넌-루가 프로그램'을 적용했다. 구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와 벨라루스, 카자흐스탄, 우크라이나 등에 남은 핵무기 제거를 위해 기술과 자금 지원을 제공하는 내용이다.
또 하나 눈여겨볼 대목은 남아프리카공화국 모델이다. 남아공은 핵무기를 보유하면 국제적으로 고립될 수 있다는 판단에 1989년 스스로 핵 프로그램을 포기하고 6개의 핵무기를 폐기했다. 완성된 핵무기와 개발 프로그램을 실제 보유했다가 자발적으로 포기한 사례는 전 세계에서 남아공이 유일한 것으로 평가된다.
실제 강 장관과 볼턴 보좌관의 회동에서는 이 모델 역시 거론됐다는 후문이다. 남아공 모델은 '보상'보다 자발적이고 신속한 '사찰과 검증'에 초점이 맞춰진 방식으로서 미국이 선호하는 모델이지만, 단계적 이행과 그에 따른 보상을 강조하는 북한과의 절충이 불가피해 보인다.
외교가에서는 이번 회동에서 거론된 비핵화 사례들이 '자발적 핵포기'라는 공통점을 띠고 있으면서도 절차와 과정이 제각각이라는 점에서 이를 일률적으로 북한에 적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데 한미 양국의 공감대가 형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워싱턴 특파원들과의 간담회에서 북한 비핵화 모델과 관련, "상황마다 독특한 요소들이 있는 만큼 특정 방식을 뭉뚱그려 북한에 적용한다고 말하는 건 어폐가 있다"고 설명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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