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감에 시달릴 때 "예쁘다" 칭찬
탤런트 장나라, 선생님 덕분에 성공
말 한마디 몸짓 하나 아이들에 영향
내일은 스승의 날, 감사와 응원 보내
탤런트 장나라 씨의 인터뷰 기사를 보았다. 성공한 그녀의 오늘은 고교 1학년 때 담임 선생님 덕분이라는 내용이다. 선생님은 평범한(?) 장 씨를 볼 때마다 "예쁘다, 예쁘다" 해주셨다고 한다. 성공할 수 있을지 늘 불안감에 시달리던 그녀였다. 선생님의 칭찬은 무한한 자신감을 그녀에게 심어주었다. 대체로 공부를 못했어도 담임 선생님 과목인 국어 성적만은 좋았다고 한다.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기사였다. 나 역시 그런 증언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장나라 씨처럼 예쁜 얼굴을 스스로 평범하다 생각한 것 말고는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나는 영어를 잘하는(?) 편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스스로 그렇다고 믿는다. 근거 없는 자신감은 중학교 1학년 때 선생님 덕분이다. 비슷한 또래들처럼 나는 영어를 중학교에 입학하고 처음 접했다. 알파벳 대문자, 소문자를 인쇄체, 필기체로 그리기 시작한 게 영어 수업의 시작이었다. 중학교 수업시간은 어수선했다. 멋모르고 진학한 학교는 알고 보니 전수학교 병설중학교였다. 불안과 불만이 어린 마음에 쌓여갔다. 제대로 수업이 될 리 없었다. 머리 굵은 전학생들과 선생님들 간의 폭력과 드잡이가 일상이었다. 그런 와중에도 영어 시간만은 이상하게 조용했다. 영어 선생님은 어머니처럼 후덕한 인상의 중년 여성이셨다. 속된 말로 꼴통들의 말썽도 푸근한 미소로 넉넉하게 품어 주셨다. 다른 선생님들 앞에서는 반항하던 학생들도 영어 선생님 앞에서는 순한 양이 되었다. 나에게 결정적인 계기는 중간고사였다. 알파벳을 필기체로 쓰는 문제, 몇몇 객관식에 이어 마지막 문제가 하이라이트였다. "'축하합니다'를 영어로 쓰시오."
교과서에 나오긴 했지만 그 긴 단어(congratulations)를 외우는 아이들은 드물었다. 선행 학습도 없었고 제대로 된 학교가 아니었음을 감안하면 그렇다는 얘기다. 시험 다음 수업 시간에 선생님은 나를 불러 세우셨다. 전교에서 '축하합니다'를 제대로 쓴 사람은 내가 유일하다고 칭찬해 주셨다. 창피한 생각도 들었지만 우쭐한 마음도 생겼다. 이후 선생님은 나를 지명하여 책을 읽게 하는 등 관심을 보이셨다. 내가 열심히 영어를 파고든 것은 너무도 당연한 귀결이다. 사실 그 이후 영어를 할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았다. 그러나 영어를 잘한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만은 항상 있었다. 미국 유학을 가서 로스쿨을 졸업하고 오늘날의 내가 되기까지 영어 선생님의 그 칭찬 한마디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다.
내일이면 다시 스승의 날이다. 이런저런 눈치를 보느니 스승의 날을 아예 없애자는 주장도 있다. 교권은 추락하고 교육이 사라진 학교 현장이 되었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나는 그래도 아직 선생님들에게 희망을 갖고 있다. 아직도 절대다수의 선생님들은 자신의 말 한마디, 몸짓 하나가 아이들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 잘 알고 교육에 임하고 있다고 믿는다. 장나라 씨나 나뿐일까. 모든 사람이 선생님의 추억을 갖고 있다. 크든 작든 자신의 삶에 남아 있는 선생님의 흔적을 증언할 수 있을 것이다.
종교인들도 한 사람의 영혼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선생님들은 그 이상이다. 지덕체라는 말처럼 한 인간의 지식과 덕성과 육체에 미치는 선생님들의 영향력은 총체적이다. 세상에 이처럼 귀한 직업이 또 있겠는가. 나 역시 가르치는 일을 하면서 스승의 날을 맞고 보니 얼마나 엄중한 소임을 맡고 있는지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그러고 보면 스승의 날은 반드시 있어야겠다. 학생들을 위해서도, 가르치는 선생님들을 위해서도 그렇다. 스스로 새롭게 다짐하기 위해서 말이다. 이 땅의 모든 선생님들에게 감사와 응원을 보냅니다.
노동일 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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