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최경철이 만난 사람] 김상훈 서울 봉은사 신도회장

"下心과 인연, 내 삶을 즐겁게 만들어주는 부처님의 가피"

김상훈 서울 봉은사 신도회장. 사진 이무성 객원기자
김상훈 서울 봉은사 신도회장. 사진 이무성 객원기자

엄청난 유동인구가 몰리는 대한민국 경제 중심 서울 강남 코엑스 바로 옆에 큰 사찰이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봉은사(奉恩寺)다. 서울은 대구와 달리 서울을 대표하는 사찰이 도심 한복판에 있어 신도들의 접근성이 좋다. 강남 한복판에 봉은사가 있다면 강북의 중심 광화문 인근에는 조계종 총본산 조계사(曹溪寺)가 자리 잡고 있다. 신도들은 가까운 곳에 절이 있어 편리하고, 사찰 입장에서도 더 많은 불자들을 쉽게 접할 수 있다.

부처님오신날을 열흘여 앞둔 지난 10일, 기자는 봉은사를 찾아갔다. 서울 지하철 9호선 봉은사역이 있을 만큼 봉은사는 접근성이 뛰어나다. 부처님 오신날이 다가와서인지 평일인데도 봉은사에는 많은 신도들이 오가고 있었다.

등록 신도만 38만 명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사찰인 봉은사는 구미 출신 김상훈(62'법명 법장) 한국석유유통연구소 이사장이 신도회장을 맡고 있다. 그는 이곳 주지 원명 스님과 힘을 합쳐 천년 고찰을 넘어 21세기형 사찰을 만들어 보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김 회장은 서울에서는 이름이 잘 알려진 사람이다. 구미를 일찍 떠난 뒤 서울에서 사업을 해 큰 성공을 거뒀고 미스코리아 진 출신 장윤정 씨를 아내로 맞아 화제를 뿌리기도 했다. 경제 현장에서의 실무 경험을 인정받아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의 경제특보로도 활동 중이다.

-38만 명 신도가 있는 곳의 신도회장이라면 대단한 자리 아닌가? 원래 불심이 깊었나?

▶우리 아들까지 우리 집안은 5대 독자 집안이다. 아버지도, 나도 구미 해평 도리사에서 할머니와 어머니가 열심히 기도를 해서 낳았다는 얘기를 들었다. 도리사 기도 효험이 자손을 번창시키고 집안을 일으켰다는 것이 집안 어른들의 일치된 생각이다, 그러다 보니 어렸을 때부터 집안 사람들 모두 자연스럽게 불심이 깊어졌다. 꽤 부농이었던 할아버지는 도리사 주지 스님께 나락 10가마니씩을 매년 시주했다고 들었다. 덕분에 나도 어린 시절부터 스님과 가까워졌다. 주지 스님이 내 방에서 주무신 적도 많다. 아버지가 경찰 공무원이어서 전국으로 다니는 바람에 나는 구미 조부모님 밑에서 컸는데 방학 때면 어김없이 절에 가서 지냈다. 어렸을 때는 사실 절이 무서웠다. 어린애가 불심이 뭔지를 알 수 있겠나? 대웅전의 도깨비상이 무서웠고 밤이면 늑대 울음 소리가 나서 힘들었다. 부처님께 열심히 빌면 소원성취한다는 말 때문에 절하고 그 횟수를 열심히 셌다. 할머니가 1천 번 절을 하면 나도 200번은 했다. 어린 시절부터 절에서의 생활을 많이 익혔고 불심이라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알게 됐다.

-신도회장은 어떻게 하게 됐나?

▶봉은사의 전임 신도회장이 잘 아는 분이었다. 사실 봉은사에 온 것은 지난해였다. 내가 불자로서의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오자마자 신도회 부회장을 했고 전임 회장이 회장직을 더 이상 수행하기 어려운 형편이어서 어쩌다가 회장에 출마했다. 투표로 뽑았는데 다른 후보가 나서지 않아 찬반 투표를 통해 내가 됐다. 내가 사업을 오래 해서 그런지 사람을 잘 사귀고 대인 관계가 좋은데 그 덕분에 된 것 같다. 절에서는 주지 스님이 큰 힘을 갖고 있지만 봉은사처럼 큰 절은 신도회가 굉장히 중요하다. 대형 교회 체제가 많은 개신교도 장로들을 중심으로 운영되듯이 봉은사의 신도회장이라고 하면 개신교에 빗대면 대표 장로로 보면 될 것이다.

-봉은사 신도회는 다른 사찰과 비교해서 뭔가 다른 점이 있나?

▶다른 절에 가보라. 신도회장실이 있는 곳이 없다. 그런데 봉은사에는 신도회장실이 있다. 나는 사업을 오래 했는데 근로자들이 주인의식을 가지면 그 회사가 잘된다. 절도 마찬가지다. 신도들이 잘해야 한다. 스님들이 모든 걸 다 할 수 없다. 역할에 한계가 있는 것이다. 신도가 없고 스님만 계시면 그것은 절이 아니다. 그냥 암자일 뿐이다. 절이 있는 것은 포교를 위함이다. 적극적 포교를 위해서는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준비가 필요하다. 더욱이 도심, 특히 서울 강남 같은 곳은 지식인들이 많이 온다. 신도회가 활성화되어서 예전과 다른 새로운 절을 만들어야 한다.

-지난 3월 취임했는데 어떤 일을 할 생각인가?

▶나는 스님들과 힘을 합쳐 한국 불교의 표준을 만들어보고 싶다. 봉은사는 교육사업과 복지사업을 하고 있는데 이를 더 확대하는 것이 신도회의 몫이다. 봉은사는 7곳의 노인복지회관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를 신도회가 직접 운영하고 있다. 절에서 하는 일인데 일반 복지회관과는 뭔가 달라야 한다. 이곳에 오는 분들을 불심으로 모셔야 한다는 뜻이다. 불심은 이곳을 찾는 노인들에게 편안한 마음을 안겨주는 것이다. 신도회의 역할이 중요하다. 이렇게 가면 자연스레 포교가 이뤄진다. 요즘처럼 종교에 관심이 없는 시대에 봉은사 신도는 늘고 있다. 지난달에 방생법회를 했는데 그 전에 2천여 명이 왔는데 이번에는 5천여 명이 왔다. 대한민국 최대의 부촌 강남 사람들도 뭔가 허전하다는 거다. 돈만 벌면 끝인가? 마음의 안식에 대한 수요가 있다. 이런 역할을 우리가 해야 한다. 봉은사가 공양간을 운영하는데 최상의 식재료를 이용, 7가지 반찬으로 상을 차린다. 절을 찾는 신도들에게는 유료로, 어려운 이웃들에게는 무료로 제공한다. 종교가 나누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이 부분을 신도회가 담당해야 한다.

-신도가 늘고 있다는데 젊은 사람들은 어떤가? 21세기형 사찰의 모습으로 가야 하지 않는가?

▶맞다. 봉은사의 주지 스님과도 의견이 일치하는 부분이다. 21세기형 절이 되어야 한다. 봉은사 인근 한전 부지가 공원화되는데 이렇게 되면 강남에 대공원이 만들어진다. 여기에 맞춰 봉은사 주차장을 지하화하고 지상에는 유아원'유치원, 노인복지시설을 만들고 템플 스테이 공간도 조성한다. 세종문화회관급인 3천 석짜리 문화공연장도 계획하고 있다. 봉은사는 강남에 있기 때문에 외부 방문객이 엄청나게 많다. 방문객의 절반이 외국인이다. 천년고찰에 문화를 입히고 K팝도 입히고, 종교를 넘어 예술과 문화의 새로운 전당을 만들어야 한다. 사업을 오래 한 내가 신도회장이 된 것도 신도들의 이런 기대 때문일 것이다. 이제 절에 비즈니스 마인드를 접목시켜야 한다. 사찰 경영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포교도 될 수 없다.

-사업을 오래 했다고 들었다. 어렸을 때부터 접한 불심(佛心)이 살아가는 데 큰 버팀목이 됐나?

▶나는 사업을 하면서 신개척지를 많이 뚫었다. 대표적인 것이 위험물질 운반이었다. 아무렇게나 운반하던 위험물질을 내가 특수차를 이용해서 실어 나르는 비즈니스 분야로 만들어 개척해냈다. 글자 그대로 위험물질 운반이다 보니 위험한 사고가 나지 않을 수 없었다. 30대 중반 무렵이었다. 액화암모니아를 가득 실은 우리 회사 소속 18t짜리 탱크 트레일러가 서울 판교 부근에서 낭떠러지 아래로 굴렀다. 새벽 2시에 전화를 받았다. 사고가 났다는 것이었다. 사고 당시 충격으로 액화암모니아가 새 나가면 반경 500m 안에 있는 사람들은 기도가 막혀 죽는 상황이었다. 현장에 가보니 운전기사는 다행히 괜찮았는데 차를 낭떠러지 밑에서 도로 쪽으로 들어 올리는 것이 급선무였다. 크레인 기사를 불렀는데 위험물질임을 알고 나더니 작업을 안 하려고 했다. 내가 낭떠러지 밑으로 내려가 탱크로리 위로 올라섰다. 그리고 "괜찮다. 내가 보증한다"고 외치며 크레인 기사를 설득했다. 내가 위험한 탱크로리 위에 올라서니 크레인 기사가 안심했다. 겨우 사고 수습이 이뤄졌다. 나는 절에 다니면서 잡스러운 것을 물리치고 내려놓을 줄 아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익히려고 노력했다. 사업을 하면서, 특히 위험물질 운반업을 하면서 마음을 비우는 노력을 많이 했다. 사장이 사장의 권위를 버리고 직접 탱크로리 위로 올라서니 문제가 해결됐다. 내가 이런 행동을 보이니 우리 회사 운전기사들이 달라졌다. 노조가 있었는데 "야, 저 사장, 정말 대단하네"라는 소문이 퍼졌다. 그 이후로 노조와 신뢰가 쌓였고 사업은 더 잘됐다.

-사업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구미에서 조부모님 밑에서 크다가 부모님이 계시는 서울로 왔다. 군대를 다녀온 뒤 중동 경기가 굉장히 좋았다. 사우디아라비아 왕립대학에 유학을 가면 장학금도 주고 그 학교를 졸업할 경우, 고임금을 받을 수 있는 일자리를 획득할 수 있다고 해서 사우디행을 준비하고 있었다. 왕립대학 입학을 위해서는 왕의 사인이 있어야 한다고 해서 신청서를 내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친구 삼촌의 부탁이 들어왔다. 버스 회사를 인수하는데 좀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친구 삼촌은 문맹이어서 인수 작업에 너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도와주지 않을 수 없었다. 버스회사 총무부장 자리에 앉아 일을 도왔다. 1970년대였는데 그 당시 서울 시내 A급 노선은 버스가 한 번 움직이면 30만원이 남았다. 엄청난 이익이었다. 그러니 총무부장은 좋은 A급 노선을 따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것이 주임무였다. 서울에서 과천'안양 쪽으로 나가는 노선을 따는 목표를 세웠다. 이 노선은 시외버스 요금이 가능한 구간이었고 신호등이 없어 운행 속도를 높일 수 있었다. 그런데 당시 서울시청 운수과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큰 이권이 달려 있다 보니 운수과는 정권의 실력자와도 연관이 있었다. 골치만 앓고 있었는데 10'26사태가 터졌다. 신군부가 들어왔고 어쩌다 기회가 닿아 버스 노선에 대한 하소연을 했다. 운이 좋았던지 노선을 땄고 내 공로를 인정받아 버스 5대를 내 몫으로 받았다. 당시 버스 한 대 가격이 5천만원이었는데 2억5천만원을 들고 버스 회사를 떠나게 됐다.

-그리고 바로 특수운송업을 했나?

▶내가 중동에 관심이 많다 보니 '한국'이란 석유'라는 회사를 알게 됐다. 석유를 판매하는 회사인데 서울 대리점을 따면 괜찮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 회사의 최대 주주는 이란 정부, 2대 주주는 쌍용의 김석원 회장이었는데 대리점은 당시만 해도 친인척이 아니면 안 주던 시절이었다. 서울 왕십리의 부동산 거부와 손을 잡고 결국 대리점을 따냈다. 주유소 20곳, 가스충전소 10곳을 운영했다. 사업이 이때부터 고속도로로 달렸다. 특수운송업은 그 이후에 여천석유화학단지에 우연히 들렀다가 하게 됐다. 고압가스를 운송해야 하는데 너무 위험해 운반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는 대기업 관계자의 얘기를 듣고 나서였다. "제가 하겠습니다"라며 손을 들고 나섰다. 차 3대를 불하받아 비닐의 기초 원료인 염화비닐을 배에서 공장으로 실어 나르는 일부터 시작했다. 사업이 잘돼 순식간에 특수차만 500대가 됐다.

-인생에 시련은 없었나?

▶계속 잘되기만 했다면 내 마음에 부처님이 계셨겠나? 앞서도 얘기했지만 특수운송업을 하다 보니 사고가 너무 무서웠다. LPG를 실은 화물차가 안전조치도 하지 않고 타이어 펑크 때우는 작업을 하다가 폭발사고로 번져 2명이 숨지는 안타까운 사고도 있었고, 서울 봉천동 주택가에서 싣고 가던 염소가 터져 난리가 난 적도 있었다. 염소는 소독 기능에 있어서는 정말 탁월하지만 엄청난 독극물이다. 사람의 기도를 태워버릴 만큼 독하다. 차를 500대 굴렸는데 사고 생각 때문에 너무 큰 스트레스를 받고 살았다. 부처님의 자비가 없었다면 그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은 석유유통연구소 이사장으로 있는데 이 연구소는 무슨 일을 하는 곳인가?

▶김대중 정부 때 정유 시장에 대한 자율화 방침이 섰다. 그래서 내가 이 시장에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하고 뛰어들었다. 자체 부두시설을 평택항에 만들고 라이선스도 받았다. 그런데 갑자기 정부 정책이 변경됐다. 자율화를 안 하고 다시 종전대로 돌아간 것이었다. 엄청난 손해를 봤다. 정부 정책이 이럴 수 있는가 싶었다. 내 생애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다. 마음이 너무 상해 미국에 들어가 살기도 했다. 나는 석유 유통 분야에 대해서만큼은 최고 전문가라고 자부한다. 시장에 좀 더 싸게 제품이 유통돼 공급자와 소비자가 상생해야 한다. 시장이 바로 서고 제대로 굴러갈 수 있도록 역할을 하기 위해 이 연구소를 운영한다. 최근에 전국 택견연합회 회장도 하면서 체육단체에도 몸담아봤는데 어느 곳이든지 교통정리를 잘했다는 평을 듣는다. 나는 절에 다니면서 '하심(下心)' '참 좋은 인연(因緣)입니다'라는 가르침을 가장 좋아한다. 하심은 나를 낮추는 것이다. 나를 낮춰 겸허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참 좋은 인연임을 느끼며 살면 어디서든 화합하고 중재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나 자신도 참 즐겁다. 신도회장도 이런 마음을 기둥 삼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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