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 지자체 간 교류, 통일 앞당긴다

나의 아버지는 6'25 참전 용사셨다. 엄동설한의 압록강 전선에서 종아리의 살점이 모닥불에 타들어 가는 것도 모른 채 깊이 잠들 만큼 죽을 것 같은 고통과 함께 전쟁터에서 17세부터 20대 중반까지 거의 8년을 보내셨다. 그랬던 아버지가 (이젠 곁에 안 계시지만) 노년에 장성한 자식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들려주신 노래가 '두만강 푸른 물에~'였다. 아마 그 노래에 담긴 당신의 마음은 동족상잔의 아픔을 직접 보면서 전쟁터에서 젊음을 보낸 한 노병의 아련한 통일에 대한 염원이었으리라. 갑작스레 아버지의 노래가 생각나는 건 다정히 손잡고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넘어오는 남북 정상을 보면서이다. 가슴 두근거리게 하고 환영할 만한 일이다.

1945년 해방 이후 6'25전쟁이라는 민족상잔의 비극을 겪고 냉전(Cold War)이라는 국제정치 환경에 둘러싸여 남과 북은 서로를 철천지원수로 여겼다. 따라서 남북 교류는 당연히 전무(全無)하다시피 하다가 반세기가 흐른 2000년, 역사적인 6'15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남북한 지방자치단체 간 교류가 다시 살아났다.

그러나 북한의 소극적 개혁 개방 태도, 북핵 사태, 서해교전, 금강산 관광객 피격사건과 남한 내부의 '퍼주기' 논란 등이 상승작용을 일으키다가 마침내 천안함 폭침사건으로 인해 대북지원사업을 보류하는 5'24조치가 발표됐다.

혹자는 지자체 간 교류가 통일과 무슨 관련이 있는가라고 물을 수 있겠으나 남북통일을 위해 지방의 역할이 필수불가결하다는 것을 우리와 같은 분단국이었다가 1990년에 통일을 이룬 독일의 경험에서 알 수 있다.

우선, 지자체 간 교류 활성화는 통일 어젠다에 대한 중앙정부의 독점으로 인해 획일화되고 경직된 교류에서 탈피할 수 있다. 또한 중앙정부 간 교류는 국제적, 국내적 정치 환경에 의해 자주 중단될 수밖에 없는 한계를 가지는데 반해 지자체 간 교류는 중앙 정치적 큰 사건이 없는 한 지속적이고 자유롭게 유지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마지막으로 지방 간 교류협력 활성화는 통일을 촉진시킬 뿐만 아니라 통일 이후 발생할 이른바 통일 비용의 상당 부분을 감소시킬 수 있다. 북한의 경제 성장으로 인한 자유와 개방에의 갈망은 통일을 앞당길 수 있고 지방 간 행정'문화'예술'청소년 교류 등 인적 교류는 빈번한 주민 접촉을 가져와 민족적 동질성 회복과 열등의식에서 오는 사회적 비용을 감소시킬 수 있는 것.

다행히 우리 대구시는 10여 년 전부터 생필품 지원, 내복 보내기 등 인도적 지원을 계속하고 있다. 지난해엔 국채보상운동 기록물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계기로 국채보상운동 자료의 남북한 공동조사를 추진 중에 있다. 또한 '통일 정책수립기초연구'를 완료하여 남북교류 추진 전략을 수립하였고, 이에 필요한 남북교류협력기금 50억원도 조기 확보하였다.

이제 모든 준비는 끝났다. 북한의 핵, 미사일 도발로 인해 춥고 긴 겨울만큼이나 꽁꽁 얼어붙었던 남북관계가 어느새 남북 두 정상이 형과 아우처럼 손을 맞잡은 것을 보는 지금, 포화 속에서도 살아 돌아오신 아버지께서 '눈물 젖은 두만강'을 부르시던 그 눈빛이 이제 이순이 된 자식의 마음을 울린다.

전재경 대구시 자치행정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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