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광장] 다시 레드벨벳이다

다시 레드벨벳이다. 화면 가득 웃고 있는, 저곳은 한눈에 봐도 청와대다. 아니나 다를까 남북평화 협력기원 남측예술단 초청 오찬이라고 한다. 순간 한 달 전 일이 뇌리를 스쳤다. 그때, 레드벨벳과 조이가 실시간 검색어 수위에 오른 걸 보며 처음엔 흔한 연애 스캔들일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열어 보니 논조가 전혀 딴판이었다. 뜻밖에도 데뷔 5년 차의 걸 그룹이 나랏일로 논란의 중심이 되어 있었다. 발단은 조이의 남북평화 협력기원 평양 공연 불참이었다. 소식을 읽은 일단의 사람들이 쉽게, 그리고 서슴없이 조이를 비난했다. 그런 국가지대사(國家之大事)를 어떻게 다른 일정을 핑계로 나 몰라라 하느냐는 게 이유였다. 그건 마치 병역이나 납세처럼 마땅히 져야 할 국민의 도리를 저버린 것에 버금갈 만큼 자못 강도가 셌다.

물론 반박도 있었다. 조이인들 왜 안 가고 싶었겠느냐며, 그건 순전히 돈만 밝히는 소속사의 잘못이라고 조이와 레드벨벳을 감싸는 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그렇게 조이와 레드벨벳, 그리고 SM엔터테인먼트까지, 이들을 향한 갑론을박이 일주일 넘게 계속되었다. 하지만 어디에도 평양 공연 또한 나랏일이기 이전에 가수에게는 또 하나의 공연일 뿐이며 시간이 남아나도 가기 싫으면 그뿐이라는 이야기는 없었다. 그게 애국은 물론 국민의 도리, 가수의 책임을 거론할 사안이 아니라는 말도 없었다. 어쨌든 레드벨벳은 자신들에게 쏟아진 곱지 않은 시선을 등에 진 채, 그리고 어찌 보면 아직 그들에겐 무거울 수 있는 평양이라는 곳에 들어가 3박 4일의 공연 일정을 소화해냈다.

그럼에도 TV를 통해 본 그들의 무대는 흔들림이 없었고 태도는 프로다웠다. 그리고 그렇게 마무리될 줄 알았다. 그런데 귀국 후 이어진 인터뷰에서 '영광이었다'라고 한 말 한마디가 다시 문제가 되었다. '북의 독재자를 만나고 와서 그게 할 소리냐'며 레드벨벳은 또 한 번 지탄의 대상이 되었다. 평양 공연 이전이나 이후나 뉴스는 레드벨벳의 '무대'가 아니라 그들을 본 북쪽 사람들의 반응을, 레드벨벳의 '음악'이 아니라 그들의 말과 몸짓들을 훨씬 더 샅샅이 전했다. 그래서 그랬을까? 한 달여 만에 뉴스 화면에 잡힌 레드벨벳을 보는 순간, 반갑기보다는 '또 왜 불려왔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아마 저기 모인 가수들 중 제일 바쁠 텐데 그냥 좀 내버려두지 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그들의 미소가 여전히 흔들림 없다는 것이었다. 화면에 비친 그들의 포즈는 어색하지 않았고 조금 긴장한 듯 보여도 진정으로 그 자리를 즐기고 있었다. 그런데 말썽은 또 일어났다. 청와대 오찬에 앞서 기자들의 질문에 레드벨벳이 '김정은 위원장이 따뜻한 모습이었다' 라고 말한 걸 두고 다시 비판이 일었다. 그렇게 그들은 평양 공연 이전에서 이후까지 한 번도 음악으로, 또는 그들만의 메시지로 주목받지 못했다. 언제나 다른 일로 쉽게 거론되고 쉽게 비난받았다.

나라 밖에서 갑자기 우리 휴대폰이 더 잘 팔리고 화장품까지 인기몰이를 하게 되면 그게 다 한류 덕분이라고들 한다. 그럼 그걸 만들어낸 주역들에게 한 번쯤은 제대로 고마워해야 한다. 고대 제천 행사로부터 전승된 민족의 풍류문화 덕이라고만 할 게 아니다. 아이린, 웬디, 슬기, 조이, 예리에게 먼저 고맙다고 말해야 한다. 평양 공연도 갔다 와줘서 더 고맙다고 말해야 한다. 이참에 그들의 음악을 제대로 들어봐야겠다. 다시 레드벨벳이다.

권은태 (사)대구 콘텐츠플랫폼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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