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 북의 비핵화 몽니, 냉정 찾으라는 요구다

남북 고위급회담 북측 수석대표인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이 "남조선의 현 정권과 다시 마주 앉는 일은 쉽게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남 고위급회담을 중지시킨 엄중한 사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대화를 하지 않겠다"고 했다. 지난 16일 새벽 전화통지문을 통해 고위급회담을 일방적으로 취소한 데 대해 우리 정부가 유감을 표하자 한 걸음 더 나간 것이다. "일방적 핵 포기를 강요하면 미국과의 정상회담도 다시 고려할 것"이란 말도 나왔다. 다분히 우리 정부에 대한 위협적 발언들이다.

이는 우리 국민에게 최근 전개된 일련의 사태에 대해 너무 들뜨지 말 것을 주문한다. 일사천리로 진행될 듯하던 북 비핵화에 일단 쉼표를 찍으라는 요구다. 남북 정상회담을 일주일 앞둔 4월 20일 핵 완성을 선언했던 김정은이다. 남북 정상회담에선 판문점 선언문 말미에 한반도 비핵화를 대강만 언급했을 뿐이다. 북한 주민들에겐 '비핵화'를 공표하지도 않았다. 최근 북의 태도 급변은 남북 정상회담 이전 김정은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경고다. 그럼에도 우리 정부는 남북 정상회담에서의 김정은에 매달려 있다. 북의 몽니에도 북 비핵화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경제 지원에 대한 청사진이 넘쳐 난다.

각종 협상이나 회담에서 북의 막판 몽니는 익숙한 풍경이다. 북은 박근혜 정부 때인 2013년 9월 남북 이산가족 상봉에 합의하고서도 상봉 나흘 전 일방적으로 취소를 결정한 바 있다. 2015년 5월엔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개성공단 방문 허용을 통보했다가 돌연 불허한다고 바꿨다. 올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를 전후해서도 여러 차례 발을 뺄 듯 위협했고, 현송월의 남한 방문을 방문 하루 전 중지하겠다고 통보한 적도 있다.

이야말로 우리에게 익숙한 북의 모습이다. 그러니 북이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기한다고 해서 들뜰 일은 아니다. 10년 전 영변 냉각탑 폭파 때도 '드디어 북 비핵화'를 기대했지만 허사였다. 북 비핵화를 거머쥘 때까지는 북미 정상회담에 대해서도 환희보다는 우려하는 시선에서 지켜봐야 한다. 우리가 들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순간 북은 몽니를 부리고 있다. 냉정해지지 않는다면 '더 이상 만날 일 없다'는 북의 몽니는 더욱 힘을 얻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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