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3선 퇴임 앞둔 김관용 경북도지사] "경북 새 도약 발판 마련, 도민에 사랑받은 행복 12년"

기초·광역단체장 23년 역임, 살이있는 지방자치의 역사, 중앙 진출 제안 유혹 물리쳐

김관용 경북도지사는 21일 매일신문과 인터뷰에서
김관용 경북도지사는 21일 매일신문과 인터뷰에서"퇴임 후 새마을운동의 세계화 및 외국과의 문화교류 사업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겠다"고 밝혔다. 정운철 기자 woon@msnet.co.kr
김관용 도지사가 본지 김교영 편집부국장의 질문에 열정적으로 대답하고 있다. 김교영 편집부국장 kimky@msnet.co.kr
김관용 도지사가 본지 김교영 편집부국장의 질문에 열정적으로 대답하고 있다. 김교영 편집부국장 kimky@msnet.co.kr

'DRD'(들이대), '미스터 새마을', '야전사령관', '일 중독 도지사'. 김관용 경상북도지사의 별명이다. 1995년 구미시장에 당선된 이래 대한민국 유일 민선 6선 단체장이라는 기록을 세운 김 도지사가 23년간의 '행정 대장정' 마무리를 앞두고 있다. 도지사로 재임하며 경북의 숙원사업인 도청이전을 완료하고, 코리안 실크로드 프로젝트를 추진해 문명교류의 새로운 길을 열었다. 전국 최초로 농민사관학교를 설립해 6차 산업화 시대에 농업의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고, 새마을 세계화 사업을 성공적으로 정착시키는 등 탁월한 업적을 인정받고 있다. 초등학교 교사로 시작해 여섯 번의 자치단체장 당선 등 공직생활이 삶의 전부나 다름없다는 김 도지사를 21일 경북도청에서 만나 퇴임 소회를 들어봤다.

-퇴임을 앞둔 시점에서 중앙 정계로 진출했더라면 하는 후회는 없는지?

▶자치단체장을 23년 했다. 제 삶이 곧 지방자치의 역사라고 생각한다. 중앙으로부터 제안과 유혹이 많았지만 지방의 절박함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떠나지 않았다.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 사태를 맞아 보수의 맥을 잇기 위해 대통령 후보 경선에도 참여했다. 국가 비상사태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도민의 진심 어린 지지와 외부의 요청으로 큰 결심을 했다. '지방에도 사람이 산다'는 점을 중앙 정치권에 확실히 각인시켰다. 후회는 없다. 오히려 지방자치 역사를 이끌어왔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지방자치의 근본적인 문제는 무엇이고,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1995년 시작된 지방자치는 봄이 왔는데 겨울옷을 입고 있는 꼴이다. 치열한 투쟁의 산물이 아닌 위로부터 주어진 불행한 자치다. 사무 권한, 예산 등 실질적 내용은 전부 중앙에 있다. 자치단체장 6선 동안 끊임없이 분권과 균형을 강조했다. 분권이 필요한 이유는 중앙의 시혜가 아닌 우리의 천부 권리를 되찾기 위해서다. 단순히 나누고 뺏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집중된 권력과 권한을 기능과 역할에 맞게 분화하고 협치해야 한다. 8대 2의 국세·지방세 비율을 점진적으로 6대 4로 이행해야 한다. 정치 논리가 아닌 시스템의 시각에서 봐야 한다. 특히 지방재정권 확충이 중요하다. 지방의 자율성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철저히 준비해 성공으로 이끌어야 할 숙명적 과제가 있다.

-시도지사협의회장을 두 번씩이나 맡았다. 그간 지방을 대표해 중앙정부와 투쟁도 하고 대립도 했을 텐데, 중앙정부에 바라는 것이 있다면?

▶대한민국은 '수도권 공화국'이다. 이대로는 안 된다. 수도권에 모든 가치와 자원이 집중돼 있다. 마치 블랙홀 같다. 수도권은 12%의 면적에 50%의 인구가 밀집해 있다. 추풍령 이남으로는 돈도, 사람도 내려오지 않는다. 수도권은 비만에 걸리고 지방은 고사 직전이다. 현 정부의 국정 방향은 경북도정과 일치하는 부분이 많다. 진보와 보수, 여야를 떠나 지방이 사는 길을 만들어야 한다.

-도청이전은 가장 큰 업적으로 평가된다. 도청이전의 성공 비결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경북도의 숙원사업이 도청이전이었다. 도민의 염원이었기에 선거에 떨어질 각오로 사심 없이 공약으로 결정했다. 대구시가 분리된 지 35년 만에 경북도 역사의 새 시대를 열었다. 도청 이전 2년 만에 신도시가 빠른 속도로 정착, 발전하고 있다. 4월 말 현재 주민등록인구가 1만1천 명, 상주인구 1만5천 명을 넘었다. 같은 시기 충남 내포신도시 및 전남 남악신도시보다 빠른 성장이다. 내년 상반기 상주인구 2만5천 명, 2022년까지 7만5천 명이 목표다. 신도시는 인간과 자연, 문화가 공존하는 명품도시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삼국유사 목판 복원, 신라사대계 편찬과 같은 역사문화에 대한 많은 사업을 펼쳐왔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문화유산에는 역사와 조상의 혼이 담겨 있다. 혼은 곧 대한민국을 이끌 강력한 에너지다. 민족자존과 정체성을 세우기 위해 신라사대계 편찬, 삼국유사 목판 복원을 완료했다. 실크로드 프로젝트, 종가 문화 사업도 같은 맥락이다. 혼이 있어야 미래가 있다. 현대는 4차 산업혁명, 정보화의 물결 속 혼란의 시기다. 정신적 좌표가 굳건해야 한다. 슬기롭게 헤쳐 나갈 수 있어야 한다. 경북은 한민족 역사에서 항상 중심부였다. 그 원천은 화랑, 선비, 호국, 새마을 정신 같은 정체성이었다. 차별화된 정체성은 도시의 경쟁력을 좌우할 것이다. 문화유산의 보전, 개발은 경북의 브랜드를 키우는 초석이 될 것이다.

-세 번의 해외 경주세계문화엑스포를 통해 경북과 대한민국 문화를 해외에 수출하는 데 공을 많이 들였다. 성과는 무엇이고 파급효과는 어떤 것이 있는지?

▶경주세계문화엑스포는 찬란한 신라문화를 가지고 출범했다. 1998년 국내 행사로 시작해 세계무대로 진출했다. 문화수출 1호, 문화발신국이 되는 성과를 거뒀다. 문화를 동반하지 않은 경제는 지속 가능하지 못하다. 비즈니스도 문화가 돼야 한다. 문화는 비정치적이다. 이념과 체제, 국경을 뛰어넘는다. 문화엑스포의 브랜드 가치가 국제적 위상을 확고하게 구축했다. 정부의 신(新)남·북방정책에 대한 문화적 접근 가능성을 열었다. 문화를 동반한 경제엑스포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문화는 국경이 없다. 평양·서라벌이 만나는 엑스포도 기대한다. 경북만의 독창성과 역사성을 바탕으로 국보급 명품축제를 이어가야 한다.

-'코리아 실크로드 프로젝트'가 가져온 효과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문명교류 통로인 실크로드에 대한 재조명과 정립·부흥이 목적이었다. 육상, 해양과 철의 실크로드를 완주해 문화영토를 확장하는 것이다. 작년엔 해양실크로드 중심지 베트남으로 이어졌다. 국제사회에 실크로드의 동쪽 끝은 경북임을 각인시켰다. 정부 신남·북방정책을 실천적으로 뒷받침하고 역사적 사명을 완수해야 한다. 국내적으로 문화산업을 육성하고 국제적으로 문화외교의 길을 걸어야 한다. 경북만의 독창성과 역사성을 바탕으로 문화외교 자원을 활용해야 한다.

-새마을운동이 정권에 따라 부침을 거듭하고 있다. 왜 그런가? 새마을운동 세계화는 계속돼야 하는가?

▶새마을운동은 대한민국 근대화의 원동력이다. 2005년 새마을 세계화 사업을 시작했다. 2013년 새마을세계화재단을 설립해 해외 보급을 체계화했다. 아시아·아프리카 15개국 48개 마을에 새마을운동을 전파했다. 새마을운동을 정치 논리로 이해해선 안 된다. 비판의 논거는 구시대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새마을운동은 그 자체로만 평가해야 마땅하다. 밑으로부터 시작된 국민운동이고 자생적인 잘살기 운동이다. 이념적 색깔이 없다. 정치 논리로 근본 정신을 훼손해선 안 된다. 경북의 새마을운동은 국제적으로 이미 정평이 나 있다. 단순 지원이 아닌 의식변화 운동이다. 저개발국 지도자들이 앞다퉈 요청한다. UN 공적개발원조(ODA)의 모범 사례다. 새마을정신이 인류 공생·공영에 이바지하고 있기 때문에 계속돼야 한다.

-지금까지 경북은 열악한 사회간접자본(SOC) 확충에 목을 매다시피 했다. 많이 좋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부족하다고 보는데, 어떤가?

▶SOC는 '국토의 복지'라고 표현할 수 있다. 2007년 이후 SOC에 36조원 이상을 집중 투자했다. 텅 빈 경북에 거미줄 도로망을 구축했다. 교통의 오지를 벗어나 균형발전의 틀을 마련했다. 교통망은 사람과 경제가 흐르기 위한 '핏줄'이다. 경북은 전국에서 제일 넓은 면적을 갖고 있지만 도로교통망이 상대적으로 열악하다. 현 정부의 SOC 예산 감축에도 교통망 확충 사업에 1조8천903억원을 확보했다.

-민선 광역자치단체장만 12년을 했다. 퇴임을 앞두고 아쉬운 점이 있다면?

▶도민에게 사랑받은 12년이었다. 누구보다 열심히 달려왔다. 별명처럼 신발창이 닳도록 뛰어다니며 도민과 소통했다. 'DRD'는 무엇이든 들이댄다고 해서 직원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일을 통해 성과로 평가받는 도지사가 되려고 노력해왔다. 도민들의 선택에 부끄럽지 않게 해 왔다고 자부한다. 그 결과, 경북의 새로운 도약을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 국가예산은 2006년 2조1천억원에서 2018년 10조4천억원으로 5배 늘었다. 그래서 개인적인 아쉬움보다 기대가 더 크다. '사람중심 경북세상'의 힘찬 발걸음이 계속 되길 기원한다.

-많은 사람들이 퇴임 후 진로에 대해 궁금해한다. 어떤 일을 할 건지?

▶자치단체장을 23년간 했다. 도민에게 사랑받은 영광의 시간이었다. 목표를 정해 무엇이 되겠다는 연역적 삶을 살지 않았다. 어느 자리에서건 주어진 환경 속에서 열정을 다해왔다. 도민과 함께 현장을 지켜온 든든한 도지사로 기억되고 싶다. 퇴임 후 우선은 휴식을 취하겠다. 아내와 여행도 가보고 싶다. 지방자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역할을 고민하겠다. 경북의 정체성을 세우는 소임도 하고 싶다. 경북의 정신을 대한민국의 시대정신으로 새기는 역할을 맡겠다. 도민들에게 받은 사랑을 되돌려드릴 수 있는 길을 모색하겠다.

※김관용 경북도지사 걸어온 길

김관용 경북도지사는 1942년 구미에서 태어났다. 1961년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초등학교 교사로 첫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교편을 잡으면서 영남대 경제학부 야간대학에 입학했다. 대구와 구미 간 왕복 3시간 동안 열차 안에서 학생들을 위한 수업 준비와 경제학 공부를 했다고 한다. 1971년 29세 때 제10회 행정고시에 합격했다. 구미·용산세무서장, 대통령 민정비서실 행정관을 지내면서 행정 경험을 쌓았다. 고향 구미에 대한 애정과 행정 경험, 고향 사람들의 응원으로 1995년 53세에 구미시장에 당선됐다. 경북도지사 선거에 도전한 김 도지사는 당시 한나라당 경선에서 당선 확률이 3%였다. 하지만 민선시장 11년의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도청 이전과 같은 공약을 내세워 3%의 가능성을 300표 차이의 승리로 만들며 경선에서 승리, 도지사로 당선됐다.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회 상임고문을 맡았고, 대통령 후보 경선에도 참여했다. 시도지사협의회장을 두 번이나 맡아 균형 발전을 위한 지방분권에도 앞장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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