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일단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행사를 예정대로 진행할 것으로 관측된다. 당초 약속과 달리 외신기자만 부르고 남측 취재진을 제외시킨 것은 대남 압박용 전술로 보인다. 다음 달 12일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핵실험장 폐기를 통해 비핵화 의지를 과시하면서도 한미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의 정책 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대남 압박의 고삐를 늦추지 않겠다는 의도다.
◆상황 관리 속도 조절하는 北
미국과 영국, 러시아, 중국 등 4개국 외신기자단은 23∼25일 사이에 진행될 핵실험장 폐기 행사 취재를 위해 22일 베이징에서 고려항공 전세기를 타고 원산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당초 함께 초청 대상에 올랐던 남측 취재진 8명에 대해선 북측이 명단을 접수하지 않으면서 방북이 무산됐다. 정부 관계자는 "오늘 방북은 현실적으로 어려워 보인다"며 "안타깝다"고 말했다. 남측 기자단이 추후 별도로 육로를 통해 방북할 수도 있지만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
북한의 핵실험장 폐기 방침이 처음 나온 것은 지난달 20일 김정은 국무위원장 주재하에 개최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3차 전원회의에서다. 이후 김 위원장이 지난달 27일 남북 정상회담에서 5월 중 핵실험장 폐기를 진행할 것이라며 한국, 미국 전문가와 언론인을 초청하겠다고 했다. 북한은 이어 지난 15일 남측에 통지문을 보내 통신사와 방송사 기자를 각각 4명씩 초청한다고 알려오며 이를 공식화했다.
북한은 그러나 지난 16일 새벽 한미연합 공중훈련인 맥스선더,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 공사 발언 등을 문제 삼으며 당일 예정됐던 남북 고위급회담을 전격 취소, 화해 분위기가 지배적이던 남북관계가 급반전됐다.
이후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이 "엄중한 사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남조선의 현 정권과 다시 마주앉는 일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하는 등 북한은 대남 압박의 강도를 높여가더니 끝내 남측 취재진의 방북을 불허했다. 김 위원장이 직접 문재인 대통령에게 한 약속까지 어겨가며 남북관계를 냉각시키고 있는 것이다.
북한의 이런 행보는 22일(미국 현지시간)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과 내달 12일 북미 정상회담과 관련, 대미 협상력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라는 분석이 많다. 또 김 위원장이 내부적으로 남북관계의 급속한 진전을 달가워하지 않는 군부 등 일부 강경파를 의식해 속도 조절을 하고 있다는 관측도 있다.
◆판 깰 생각은 없는 듯
미국을 향해서는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이 담화를 통해 '북미 정상회담 재고' 발언을 내놓긴 했지만 판을 깰 생각은 없는 분위기다. 특히 핵실험장 폐기 행사 자체가 무산될 가능성도 일각에서 제기됐지만 북한이 이를 예정대로 진행하는 것은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상황을 관리하려는 의지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정부도 이날 성명에서 남측 취재진의 방북 무산에 유감을 표명하면서도 "핵실험장 폐기가 예정대로 진행되고 있는 점은 주목하며, 북한의 이번 조치가 북미 정상회담의 성공적 개최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실제로 북한은 풍계리 행사를 띄우기 위해 대대적 선전전을 하고 있다.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행사를 취재할 외신기자단이 방북길에 오른 22일 북한이 관영매체를 통해 핵실험장 폐기 의미를 재차 부각했다.
조선중앙통신은 '조선(북한) 외무성 공보를 세계 언론들 보도'라는 제목의 기사를 송고, 각국 언론들이 북한의 지난 12일 외무성 공보 내용을 보도한 사실을 전했다. 외무성은 당시 공보에서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를 위한 실무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중앙통신은 외무성 공보 내용을 보도한 미국영국일본프랑스 등 각국 언론사 이름을 거론했고, 중국 신화통신과 러시아 타스통신의 관련 보도 내용은 구체적으로 인용했다. 또 핵실험장 폐기 결정에 대한 유엔 사무총장과 중국 외교부 대변인의 환영지지 입장도 소개했다.
대내용 매체인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이날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에 대한 자유한국당의 반응을 비난한 정세 해설에서 외무성 공보와 관련, "남조선 각계와 국제사회는 찬탄의 목소리를 아끼지 않고 있다"고 언급했다.
북한 매체들의 이런 언급은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를 준비하는 상황에서 행사계획을 간접적으로 재확인하고, 국제사회의 호응 사실을 강조하며 분위기를 만들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 입장을 대변하는 재일본 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는 이날 현 정세와 관련한 글에서 "(북한이) 북부 핵시험장도 투명성 있게 폐기하기로 하였다"면서 "평화를 위해 상대방에게 상응한 행동 조치를 촉구하는 선제조치"라고 강조했다.
한편 북한은 핵실험장 폐기 행사를 23일부터 25일 사이 '일기 조건'을 고려하면서 진행할 것이라고 밝혀 행사가 실제로 언제 치러질지에도 관심이 쏠린다. 기상청은 22일 북한 지역에 대한 일기예보에서 이날 낮에 서쪽 지방부터 비가 시작돼 밤에 전 지역으로 확대되겠으나 23일 새벽까지 내린 뒤 맑아지겠다고 전했다. 24일에도 대체로 맑겠다고 기상청은 전망했다.
조선중앙방송은 23일 함경남북도와 양강도 일부 지역에서 한때 센 바람이 불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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