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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 주인공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바리톤들

클래식 음악의 가장 큰 특징은, 다른 분야의 '클래식'과 마찬가지로 끊임없이 반복되고 우리에게 다가올 때마다 새로운 느낌과 감동을 전달해 준다는 점이다. 오페라 극장에는 고정된 공식이 하나 존재하는데, 첨단의 유행이나 실험적인 연출이 들어간 공연이 실패하면 돌아가게 되는 '보험'과 같은 작품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바로 베르디, 푸치니 등 이탈리아 작곡가들의 대표작과 모차르트, 로시니 등 희가극이 그것인데, 아름다운 멜로디와 극적인 줄거리를 가진 이 걸작들에는 또 하나의 매력이 있다. 바로 주인공 가까운 데에서 극의 흥미로운 반전을 만들어내는 중요한 조연, 바리톤이 맡은 배역은 주로 악역이나 노역 등으로 화려한 주인공들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베르디의 오페라에서 나오는 바리톤들은 정말 다양한 캐릭터로 등장하는데, 복잡한 심경을 지닌 아버지 역할도 많다. 오페라 '리골레토'(1851)의 타이틀 롤인 리골레토는 만토바 공작 밑에서 일하는 광대지만, '호색한'(여색을 밝힘)인 공작의 눈에 딸 질다가 보일까 봐 전전긍긍한다.

세상을 조롱하며 딸과 함께 은둔생활을 하던 리골레토는 공작에게 소중한 딸 질다가 능욕을 당하자 복수를 꿈꾸지만, 결국 사랑에 눈먼 질다에 의해 파멸의 길을 걷게 된다. '라 트라비아타'(1853)에서는 비올레타와 사랑에 빠진 아들 알프레도를 걱정하며 집으로 돌아오라 권유하는 아버지 제르몽 역을 바리톤이 맡는다. 아들의 사랑을 이해하지만 결혼과 집안의 명예를 동시에 걱정하는 제르몽의 마음은 유명한 '프로벤차 내 고향으로'라는 아리아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남자 주인공인 테너보다 더 화려하게 등장하는 바리톤도 있다. 바로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1875)에 나오는 에스카미요 역이다. 시골에서 올라온 순진한 병사 돈 호세는 담배 공장의 여공 카르멘의 치명적인 매력에 빠진다. 이 오페라도 테너의 아리아 '꽃노래'보다 바리톤 아리아 '투우사의 노래'가 좀 더 인기있는 듯하다.

극악무도한 악역은 푸치니의 오페라 '토스카'(1900)에서 만날 수 있다. 로마의 경시청장 스카르피아는 나폴레옹을 지지하는 혁명군을 잡으러 찾아다니는데, 혁명군 친구를 숨기고 도망시킨 화가 카바라도시를 고문하고 그의 애인인 토스카를 차지하려는 검은 마음을 드러낸다. 결국 악인은 심판을 받는 법, 권선징악의 줄거리임에도 바리톤 스카르피아 역에 더 큰 박수갈채가 쏟아지는 경우도 자주 있는데, 작품에 온전히 몰입된 오페라 팬들이 보내는 진실된 격려라고 생각된다.

배성희 고려야마하 피아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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