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종교칼럼] 여성가족부에 묻습니다 1

박용욱 신부
박용욱 신부

여성가족부(이하 여가부)에서 헌법재판소에 낙태죄를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서를 제출했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현행 형법이 낙태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어 낙태 시술이 불법적, 음성적으로 시행되고 있고, 여성의 생명권과 건강권, 임신·출산을 자유롭게 결정하는 재생산권이 심각하게 침해 받고 있다"는 것이 여가부의 입장이라고 합니다. 여성가족부의 이 주장이 왜곡된 근거에서 도출된 일방적인 의견 아닌가 싶어서 지면을 빌려 몇 가지 여쭙습니다.

먼저 낙태가 불법이라서 낙태 시술이 불법적, 음성적으로 시행되고 있고, 그 결과 여성의 생명권과 건강권이 침해받는다고 하셨지요. 세계보건기구(WHO)가 만든 '안전한 낙태(Safe Abortion):보건 시스템에 활용하기 위한 기술 및 정책 지침'에도 비슷한 내용이 나옵니다. 2012년 갱신된 'Safe abortion'에서 WHO는 낙태에 관해 폐쇄적인 법률과 정책을 가지고 있는 개발도상국에서 행해지는 낙태시술 4건 중 3건이 안전하지 않다고 지적합니다. 루마니아 같은 나라에서는 낙태가 불법인 탓에 무허가 업자들에게 임신중절시술을 받다가 건강을 잃거나 위험에 빠진 사례가 적지 않게 보고됩니다. 아마 이런 통계와 권고에 입각해서 여성가족부도 입장을 정리하지 않았을까 추측합니다.

하지만 한국의 실태와 자료에 정통할 여가부에서 WHO의 권고가 우리 현실과는 거리가 있다는 점을 왜 설명하지 않으시는지요? 개발도상국에서 일어나는 불법 낙태와는 달리 한국의 임신중절수술은 대부분 병의원에서 숙련된 의사에 의해 시행되고 있음을 여가부에서 모르지 않을 것입니다. 음성적으로 일어나는 일들이 으레 그러하듯, 불법 낙태 비용이 워낙 비싸서 병원 대신 다른 곳을 찾을 것이라는 예측도 우리 현실에는 부합하지 않습니다. OECD 주요국 중에서 높은 수준의 중절률을 보이는 우리나라에는 이미 큰 시장이 형성되어 있어 낙태 비용이 상당히 내려와 있다는 점을 알고 계시지요? 그런데도 굳이 개발도상국의 통계에 근거해서 여성의 생명권과 건강권을 주장하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낙태 수술로 인해서 자궁 천공 등의 손상이나 골반 염증성 질환 같은 후유증에 시달리는 여성의 건강권은 왜 언급하지 않으시는지요? PASS(Post Abortion Stress Syndrome)라 불리는 정서적인 후유증을 환자와 의사 모두 경험하게 되는 현실은 건강권과 전혀 상관없는 것입니까? 낙태로 인해서 위험해지는 임신부의 생명권과 건강권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여가부가 언급하는 "임신·출산을 자유롭게 결정하는 재생산권"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2011년 보건복지부 실태조사에 따르면 낙태 여성의 60%가 피임을 하지 않았고, 피임한 경우도 무려 82%가 피임이라고 부르기에는 무색한 방법을 썼다고 합니다. 여성이 '애 낳는 기계냐!'고 강변하기 전에, 이른바 '원치 않는 임신'을 피할 수 있는 피임방법을 실천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요. 피임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선택하는 권리가 태아를 죽일지 살릴지 선택하는 권리보다 훨씬 인간적이면서 우선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수많은 이해관계를 조정하여 합리적인 해결책을 제시해야하는 정부 부처로서, 무엇보다 여성과 가족의 가치를 존중하고 지켜야할 정부 부처로서 여가부가 책임 있는 자세와 대안 제시를 통해 제 역할을 다 해주시길 바라마지 않습니다.

박용욱 신부 대구가톨릭대 의과대학 윤리학교실 주임교수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