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의 페미니즘×민주주의/ 정희진 등 7인 지음/ 교유서가 펴냄
'메갈리아 사태' '강남역 여성 살인 사건'에 이어 최근 '미투 운동'까지. 여성 혐오, 성(性)차별, 젠더(Gender) 이슈가 우리 사회를 들썩이고 있다.
이런 사회 분위기에 힘입어 2017년 문재인 후보는 '여성 프렌들리' 후보를 자처하며 대통령에 선출됐고 여성계, 인권단체에서는 새 지도자를 환영했다.
그러나 페미니즘에 대한 대중의 관심과 이해는 넓어지고 있지만 막상 결정적인 순간에 젠더 이슈는 후순위로 밀려나곤 한다. 많은 갈등 요인을 내포하고 있어 정책화에 정부가 부담을 느끼기 때문이다. 젠더 이슈가 왜 현실 정치에서 늘 주변부로 밀리고, 정책 결정 과정에서 소외되고 있는지에 대한 설명이다.
페미니스트가 최고 지도자가 되었는데 왜 우리의 삶에 큰 변화가 없을까. 이 책의 논점은 여기서 출발하고 있다. 성(性) 이슈를 활발히 펼치고 있는 7명의 저자 시선을 따라 한국 사회의 젠더 문제를 들여다보자.
◆한국 사회 젠더 문제 여러 주제로 접근=2017년 대선 당시 방송토론회에서 한 후보는 '동성애 찬반' 문제를 이슈화했다. 한국 사회에서 성소수화 문제가 처음으로 정치 이슈화한 순간이었다.
현재 우리 사회의 정치와 페미니즘을 논하는 이 책은 이명박, 박근혜 정권에서 적폐 청산을 내건 문재인 정권으로 정권이 교체된 이후 페미니즘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한 시점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한국 사회 전반에 깔린 남성 중심 사고, 여성 혐오, 이성애 중심주의가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는다는 것이 드러났던 시점이며, 보수에 대해 도덕적 우월감을 지닌 진보의 아킬레스건이 결국 젠더라는 것이 드러났던 시점이다. 이는 '미투' 국면이 전개된 2018년 현재 다시 한 번 드러나고 있다.
이 책에서 7명의 저자는 한국 사회 전반의 젠더 문제, 특히 최근 10년 보수 정권이 지나가고 진보 정권이 집권한 현재를 중심으로 여성, 성소수자가 어떻게 소외되며 젠더 문제가 배제되고 있는지를 다루고 있다.
◆진보, 보수 정권 모두 페미니즘에 소극적=진보 정권 출범 이후 저자들은 여성 문제, 성소수자 문제에서 전향적인 접근과 해법을 희망했다. 그러나 막상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그 기대는 바로 실망으로 돌아섰다. 즉 저자들은 진보나 보수나 젠더 이슈에 대해서는 별 차이가 없다는 결론에 이른 것이다. 이런 결과는 저자들의 강의 발표에 그대로 나타난다.
1강에서 여성학자 정희진은 사적인 영역, 사소한 문제로 취급되는 남녀 관계와 젠더 문제야말로 가장 정치적인 문제라는 점을 강조한다. 이어 서민 단국대 교수는 온라인 공간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는 남성들의 여성 혐오 실태를 개괄하고, 손아람 작가는 문화생산자 입장에서 대중문화와 대중매체 속에서의 여성 차별이 어떻게 재현되는지를 찾아냈다.
한채윤(비온뒤무지개재단 이사)은 종교와 정치가 유착되는 정치 현실 속에서 성소수자가 어떻게 배제되고 혐오화되는지 그 과정을 분석하고, 5강에서 권김현영은 한국 사회에서 남성연대가 '좌우 진영'을 넘어 얼마나 강력한지를 입증하고 있다. 페미니스트 비평가 손희정은 현재 한국 사회를 설명하는 강력한 키워드인 음모론과, 역시 좌우 진영을 막론하고 강력한 남성사회, 남성연대가 어떻게 결합해 작동하는지를 '검사'를 다룬 영화를 중심으로 분석했다.
◆젠더, 페미니즘을 주요 국정 의제로=이 책은 '성평등이 민주주의를 완성한다'는 모토에서 출발한다. 지난해 '최순실 게이트'가 본격 시작되고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되기까지 많은 시민은 광장에서 촛불을 들었다. 그러나 그 촛불 시민 가운데 상당수는 문재인 정부의 민주주의에 초대받지 못했다.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고 공약한 문재인 대통령이 그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정희진은 문재인 정부의 성격을 젠더 관점에서 진단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말한다. 큰 스캔들이 없다면 이 정권이 꽤 오랫동안 지속될 거라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가 여성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간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책은 촛불 시민이 만들어낸 문재인 정부와 한국 사회를 젠더적 관점에서 진단하고, 더 나은 답을 찾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 7인의 저자는 우리 정치권의 보수와 진보가 남성연대, 여성 혐오, 이성애 중심주의, 젠더 감수성 부재에서 과감히 탈피할 것을 호소하고 있다.
'좋은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는데 우리의 삶은 왜 달라지지 않을까?'라는 정희진의 질문은 이 책을 들여다보는 작은 창(窓)으로 작용한다.
정권 교체, 촛불 정신 실천도 중요하지만 민주주의를 향한 여정에 '젠더'와 '페미니즘'을 중요한 의제로 삼아달라는 저자들의 작은 외침이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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