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99.9

물은 100℃에 끓는다. 99.9도에서는 결코 끓지 않는다. 자연계에서 0.1의 차이는 이처럼 크다. 그러나 인간 세계에서 99.9는 100과 사실상 동의어다. 트로트 가수 배일호의 노래 '99.9'를 보자. '속이 꽉 찬 남자 99.9, 사랑도 99.9'. 연인에 대한 자신의 마음이 진실하다는 고백인데, 왜 100이 아니라 99.9인가. 100은 신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0.1의 차이를 둠으로써 빠져나갈 구멍이 확보된다.

최근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확률 99.9%를 입에 담았다가 모양새를 구겼다. 이번주초 미국 워싱턴으로 향하는 대통령 전용기 안에서 그는 "북미정상회담은 지금 99.9% 성사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정상회담을 돌연 철회함으로써 0.1%가 현실이 됐다. 정 실장은 순진한 낙관론자가 돼버렸다.

한반도는 4대 열강(미국·중국·러시아·일본)의 각축장이다. 공교롭게도 태극 문양을 4괘(건곤감리)가 둘러싼 태극기 모양이 한반도와 4대 열강의 모습과 닮았다. 남북 대치 상황이 73년을 끌어온 것은 4대 열강의 이해와 대립이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이다. 그 교착 상황이 그리 쉽게 풀릴 리 없다. 지금같은 긴장 국면이 유지되기를 바라는 세력들이 4대 열강은 물론이고 남과 북에도 엄존한다.

미국 정계의 이단아인 트럼프가 정권을 잡음으로써 한반도가 천재일우의 기회를 맞았다고 해도 틀리지 않다. 트럼프는 예측 불가능해보이지만 머리 회전 빠른 승부사다. 그가 북미정상회담을 전격 철회한 배경에는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자신이 이 국면을 주도해나가겠다는 포석을 강하게 깐 것이라고 해석하고싶다.

트럼프는 지금 김정은에게 '양자택일'을 요구하고 있다. 미국인가, 중국인가. 이를 통해 중국에 대한 견제구도 확실히 던지고 있다. 남한과 일본에 했던 것처럼 트럼프에게도 몽니를 부리면 끌려들 것이라 믿었던 북한으로서는 적지않이 당황스러운 상황이다. 북미정상회담 철회 발표 이후 북한이 유화적인 제스처를 보이는 것은 다행스럽다. 진통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비핵화와 북미정상회담은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