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국격'(國格)이란 용어가 널리 유행한 적이 있다. 인격처럼 나라에도 품격이나 품위가 있다는 데서 나온 표현으로 보인다. 수많은 다양한 사람들로 이루어진 나라에 어떻게 따로 품격이나 품위가 있겠느냐마는 아마도 각 국가의 위상이나 수준을 그런 식의 새 조어(造語)로서 나타내어본 것이리라.
도시의 위상을 나타내기 위해 시격(市格)이란 단어를 잠시 사용해도 될지 모르겠다. 최근에는 경제적 자립도나 문화적 기반 등을 포함시켜 시격을 종합적으로 평가하지만 기왕에는 오직 인구만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현재 통계 수치상으로는 인천에 추월당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대구가 오래도록 한국 제3의 도시로 손꼽혀온 것도 인구수 기준이었다. 인구의 다소에 따라 자연스레 각종 편의시설이나 부대시설, 교육을 비롯한 각종 문화 기반도 갖추어지게 마련이다.
대구의 현황은 과연 그런 시격에 걸맞은가 어떤가. 대구는 오래전 한국에서 가장 진보적이고 진취적이며, 생동감 넘치는 도시로 인식된 적이 있었다. 그러나 현재 대구의 이미지라면 전혀 딴판으로서 수구보수의 온상이라 떠올릴 정도로 완전히 뒤바뀌고 말았다.
바깥에서 바라보는 것과 너무도 차이 나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대구 문화의 특장을 드러내는 표제어로서 교육과 학문이 자주 애용되고 있다. 이는 대구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와 그리 어우러지지 않는다. 대구의 정체성에 대해서 안팎의 인식이 엄청난 격차를 보인다. 그처럼 실재와 인식 사이가 어긋나는 명백한 사례의 하나로 국립대구박물관을 손꼽을 수 있다. 전국에는 중앙박물관을 비롯한 10여 개의 국립박물관이 있다. 중앙박물관을 예외로 하면 여타 박물관 명칭에는 모두 소재지의 지명이 내걸려 있다. 흔히 국립박물관의 수준도 지역의 위상에 따라 저절로 정해지는 줄 잘못 알고 있다. 특히 순진한 시민들은 국립대구박물관도 막연히 대구광역시의 시격에 어울리는 등급일 것으로 당연시하고 있다. 하지만 국립대구박물관은 10여 개 가운데 가장 낮은 등급에 속한다.
국립박물관은 박물관장의 직급을 기준으로 해서 전체 4등급으로 나뉘어져 있다. 지방박물관 가운데에는 경주가 2급지로서 가장 높고, 광주와 전주는 3급지이며, 여타는 모두 동등한 4급지이다. 등급에 따라 내부의 인적 구성이나 예산 등 일체가 결정된다. 국립대구박물관은 인구가 5~10%에도 턱없이 미치지 못하는 나주, 부여, 공주, 김해, 춘천, 제주 등과 동등한 취급을 받고 있다. 국립대구박물관 출범 당시 임시로 정한 등급은 지금껏 아무런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다. 대구시의 시격에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대구시민들은 그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애써 모르는 척하는 것인지 아니면 감각이 무딘 것인지 오래도록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러면서 최근 일각에서 대구시립박물관 건립을 추진하려는 생뚱맞은 일까지 저지르고 있다.
모름지기 우는 아이에게 젖을 더 주는 법이다. 국립박물관이 대구의 시격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위상이 크게 무시당하는 데도 가만히 있으면 누가 나서서 몫을 찾아줄까. 대구의 변화를 진정으로 바란다면 모쪼록 위상에 걸맞은 국립박물관을 갖는 일부터 시작해야 할 듯하다.
주보돈 경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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